此案為尤在涇先生所著 。 先生名怡 , 字在涇 , 自號飼鶴山人 , 江蘇長洲縣人 。 邃於醫學 , 於仲景書尤能鑽研故訓 , 獨標心得 。 時吳下以醫名者 , 如葉氏桂 、 徐氏大椿 、 王氏子接 , 均煊耀一時 。 先生與之聯鏢接軫 , 輝映後先 , 於醫道中可謂能樹一幟者 。 所著有 《 傷寒論貫珠集 》、《 金匱心典 》、《 醫學讀書記 》, 均刊行 。 惟此案未經授樣 , 其附刻於讀書記後者 , 僅有三十餘條 , 非全本也 。 此本為吾邑吳氏所鈔藏 , 咸豐兵燹後 , 詒於詹文橋張氏齋頭見之 , 假歸鈔錄 。 復就其中選精粹者 , 得十之五 , 評錄如左 , 分上下兩卷 。 竊念近時醫學荒廢 , 其簡陋剽襲 , 毫無心得者無論已 , 間有鑽研古籍 , 不知通變者 , 動輒以仲景為家法 , 而咎今人不能用古方 , 目為庸陋 。 其實古方今病 , 往往枘鑿不相入 , 執而用之 , 僨事者多矣 。 及讀先生此案 , 而不覺憬然有悟也 。 先生博極群籍 , 尤服膺仲景之書 , 所著傷寒論金匱兩注 , 上溯仲景心傳 , 獨抒己見 。 讀其書者 , 無不知先生之於仲景 , 不啻升其堂而入其室已 。 乃觀此案 , 論病則切理饜心 , 源流俱澈 , 絕不泛引古書 , 用藥則隨證化裁 , 活潑潑地 , 從不蹈襲成方 。 可見食古期乎能化 , 裁製貴乎因時 。 彼徒執古書者 , 不且與王安石之周官 , 房琯之車戰 , 其弊適相當哉 ! 是故讀他人之案 , 有不用古方者 , 或猶疑其服古未深 , 未能得力於仲景也 。 若先生則讀書不可謂不多 , 用功不可謂不切 , 其沉酣於仲景之書 , 尤不可謂其不深 , 乃其論病之平易近情也如是 , 立方之妥貼易施也如是 。 是則此案不第為治病之良規 , 並可為讀古之心法已 。 用書之以審後之讀此案者 。
이 의안은 우재경 선생이 지은 것이다. 선생의 이름은 이이고 자는 재경이며 스스로 사학산인이라 호하였으니 강소 장주현 사람이다. 의학에 깊어 중경의 글에서 더욱 옛 가르침을 깊이 연구하고 홀로 터득한 바를 드러냈다. 당시 오하에서 의술로 이름난 엽계·서대춘·왕자접 등은 모두 한때 명성이 빛났다. 선생은 이들과 연표접진하여 앞뒤로 서로 빛났으니 의도 가운데 한 깃발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저서로는 《상한론관주집》·《금궤심전》·《의학독서기》가 있어 모두 간행되었다. 다만 이 의안은 아직 판본 제작에 넘기지 않았고 독서기 뒤에 붙여 새긴 것은 겨우 30여 조목이므로 완본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 고을 오씨가 베껴 간직한 것인데 함풍 연간의 전란 뒤 내가 첨문교 장씨의 서재에서 보고 빌려 와 베꼈다. 다시 그중 정수를 골라 열에 다섯을 얻어 아래와 같이 평하고 기록하여 상하 두 권으로 나누었다. 근래 의학이 황폐하여 간략하고 조잡하게 베끼기만 하고 터득한 것이 전혀 없는 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간혹 고서를 깊이 연구하면서도 변통할 줄 모르는 자가 걸핏하면 중경을 가법으로 삼고 지금 사람이 고방을 쓰지 못한다고 탓하여 용렬하고 비루하다고 보는 것을 생각하였다. 사실 고방과 지금의 병은 흔히 장부와 구멍이 서로 맞지 않듯 들어맞지 않으므로 고집하여 쓰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선생의 이 의안을 읽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분명하게 깨달음이 있었다.
선생은 여러 책에 두루 통달하였고 특히 중경의 글을 마음에 새겨 받들었으니 저술한 상한론과 금궤의 두 주석은 위로 중경의 심전을 거슬러 올라가 홀로 자신의 견해를 펼쳤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은 선생이 중경에 대하여 당에 올라 그 방에 들어간 정도에 그치지 않음을 알지 못함이 없다. 그런데 이 의안을 보면 병을 논함은 이치에 맞고 마음에 흡족하며 근원과 흐름이 모두 투철하여 결코 고서를 두루 끌어다 대지 않는다. 약을 쓰는 것은 증에 따라 변화하여 활발하며 완성된 처방을 답습한 적이 없다. 옛것을 받아들임은 소화할 수 있기를 기하고 재단하여 만듦은 때에 따름을 귀하게 여김을 알 수 있다.
저들처럼 한갓 고서를 고집하면 왕안석의 주관과 방관의 거전과 그 폐단이 서로 꼭 맞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의안을 읽다가 고방을 쓰지 않은 것이 있으면 혹 옛것을 익힘이 깊지 못하여 중경에게서 힘을 얻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선생이라면 독서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고 공력이 절실하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 중경의 글에 깊이 잠긴 것이 깊지 않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병을 논하는 것이 이처럼 평이하고 실정에 가깝고 처방을 세우는 것이 이처럼 적절하여 시행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 의안은 병을 치료하는 좋은 규범일 뿐 아니라 옛글을 읽는 심법도 될 수 있다. 이에 써서 뒤에 이 의안을 읽는 사람이 살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