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之為學也 。 其方而已 。 方能載其道 。 以傳之千載 。 故其欲求之也 。 不由其路 。 譬如場師失養梧檟於枳棘 。 苟其失養之也 。 且人賤之 。 況又迷罔之人 。 不亦悲乎 。 我東洞先生 。 取道于越人 。 求方於長沙 。 以唱古醫之術 。 然其書之篇章 。 證或先方而發焉 。 方或後證而起焉 。 不易卒睹 。 於是先生乃因對之次之 。 名曰類聚方 。 嗟乎善乎 。 此書乃使志古醫之術者 。 得由其路也 。 不迷罔焉 。 夫道如大路然 。 孟軻氏之云 。 今乎宜也 。 詩曰不愆不忘 。 率由舊章 。 抑此之謂與 。
의학이라는 학문은 처방일 뿐이다. 처방은 그 도를 실어 천 년 동안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하고자 하면서 그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은, 동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기르지 못하고 탱자나무와 가시나무를 기르는 것과 같다. 참으로 기르는 법을 잃으면 사람들도 그를 천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또한 미혹되고 속은 사람이겠는가? 슬프지 않은가? 우리 동동 선생께서는 월인에게서 도를 취하고 장사에게서 처방을 구하여 옛 의술을 제창하셨다. 그러나 그 책의 편장에는 증이 처방보다 먼저 나오는 것도 있고 처방이 증보다 뒤에 나오는 것도 있어, 갑자기 모두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이에 선생께서 짝을 맞추어 차례를 정하고 이름을 『유취방』이라 하셨다. 아아, 훌륭하도다! 이 책은 옛 의술에 뜻을 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길을 따라 미혹되거나 속지 않게 한다. 도는 큰길과 같다는 맹가씨의 말이 지금에야 마땅하다. 『시』에서 “어기지도 잊지도 않고 옛 법도를 따른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이를 이르는 것이리라.
寶曆壬午春二月 門人 東都 山常卿謹跋
보력 임오년 봄 2월, 문인 동도의 산상경이 삼가 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