產藥川源論

元精生於腎 , 仙家借腎府為發生之地 , 不是用腎 , 乃向腎中作用 。 此腎為產藥川源也 。 人或不知 , 即謂兩腎中間別有一穴 , 真陽伏藏於內 , 修丹但用真火 , 逼出這點真陽以為用耳 。 豈知身中所有 , 皆後天渣滓之物 , 仙家不用 。 若果有元氣伏於一穴之內 , 亦是渣滓矣 。 故經曰 : 水者 , 大丹之根源也 。 天一生水 , 其位在北 , 其卦為坎 , 乃吾身藥物所產之處也 。 夫元精生於腎 , 使非靜翕則不能生 , 故作丹必心氣下交於腎 , 腎含受而翕聚之 , 然後能成變化而生元精也 。 心氣下交 , 只是凝神入氣穴耳 。 凝者非凝聚也 , 夫神至靈至妙 , 潛天潛地 , 如何凝聚得 ? 但息念而返神 , 神返於心而不外馳 , 則氣亦返於身 , 漸漸沉入於氣穴矣 。 氣果有穴乎 ? 葆真子曰 : 人之元陽真氣 , 散於四肢百骸之間 , 為視聽言動之用 , 豈有區區藏伏一穴之理 ? 若指一處而注想之 , 終必成疾 , 修丹者不可泥於凝神入氣穴之言也 。 此金丹大道 , 唯借腎為發生之地 , 以其為氣之會 、 故曰氣海 ; 以其深而在下 , 故曰氣穴 ; 以其為金華所生 , 故曰華也 。 作丹只要氣沉到此處 , 非用魂注想之謂也 。 元太虛曰 : 凝神入氣穴之法無他 , 只是收視返聽 、 回光內照而已 。 夫回光內照 , 非執著所在而用意觀照之也 , 不過靜虛以返神於內 。 其實觀無所觀 , 照無所照 , 而亦未嘗不觀照也 。 下手之功何如 ? 訣曰 : 專處致柔 , 在乎忘情識 。 忘情識之捷 , 在乎心息相依 。 心息相依 。 則情識不期忘而自忘矣 。 是息也 , 出入有聲謂之縱 , 出入不盡謂之滯 , 往來頻促謂之喘 , 不縱不滯不喘 , 綿綿若存 , 用之不勤 , 庶乎心息相依自然矣 。 然舍 「 調 」 之一字 , 其奚以 ? 或上機之士 , 但覺念起 , 即用調息 , 略照一照 , 無念即止 , 不可太著意也 。 如以意照之 , 則累照者多矣 , 又須加一忘字 。 蓋忘與照一而二 , 二而一者也 。 當忘之時 , 其心湛然 , 未嘗不照 ; 當照之時 , 纖塵不染 , 未嘗不忘 , 其忘乃真照也 。 或有隨照而昏散者 , 因平日千思萬慮 , 紛擾之甚 , 宅無一主 , 一旦驟然收拾 , 把持不定 , 故隨照隨亂也 。 治之如何 ? 才覺妄動 , 即融妄歸真 , 歸之豈外於忘照這些工夫耶 ? 此正動靜之機 , 神一出即收回之說盡矣 。 使照之而不勝 , 不可強制 , 且去應事以遣之 , 亦不可隨亂而流 , 俟其平和 , 即忘之照之也 。 夫修煉至此 , 又豈有他術哉 ? 只是採取先天之氣 , 以為金丹之丹也 。 張紫陽曰 : 採者 , 採真鉛於腎府 ; 取者 , 取真汞於心田 。 鍾離師曰 : 腎中藏伏父母之真氣 , 所謂鉛也 。 鉛中有真一之水 , 曰鉛中銀 。 腎氣傳肝氣 , 肝氣傳心氣 , 心氣自涵而為液 , 所謂砂也 。 液中有正陽之氣 , 曰砂里汞 。 傳行之時 , 以法制之 , 使腎氣不走失 , 氣中採取真一之水 , 心液不耗散 , 液中採取正陽之氣 。 蓋不採而採 , 採而不採 , 不取而取 , 取而不取 。 陳虛白所謂身心不動為採藥也 。 至如火候 、 藥物 , 真火本無候 , 大藥不計斤 。 白玉蟾師曰 : 心者 , 神也 , 神即火也 , 氣即藥也 , 以火煉藥而成丹 , 即是以神馭氣而成道也 。 夫修煉而至於成道 , 則神氣渾融 , 嬰兒顯象 。 嬰兒者 , 即我一靈真性 , 純陽不雜耳 。 白玉蟾師又曰 : 人但心中無心 , 念中無念 , 純精純氣謂之純陽 。 仙家只是教人養神 , 因人迷溺嗜欲 , 不能一刀兩段 , 故設為長生之說以誘之 。 人貪長生乃肯去做 , 一心修煉養氣 , 其實借煉精煉氣以系此心 , 養得元神靈妙 , 非是元神之外 , 精氣別結一個嬰兒也 。 然必靜虛之極 , 無我之至 , 始得脫胎神化 。 李清庵曰 : 身外有身 , 未為奇特 , 虛空粉碎 , 方是全真 。 旨哉 ! 旨哉 。
원정은 신에서 생긴다. 선가는 신부를 발생의 땅으로 빌리는 것이지 신 자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신 가운데서 작용한다. 이 신이 약을 내는 샘의 근원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두 신 사이에 별도의 구멍이 있고 진양이 안에 숨어 있으므로 단을 닦을 때 진화로 그 한 점의 진양을 몰아내어 쓴다고 한다. 그러나 몸 안에 있는 것은 모두 후천의 찌꺼기라 선가는 쓰지 않음을 어찌 알겠는가. 과연 원기가 한 구멍 안에 숨어 있다면 그것도 찌꺼기이다. 그러므로 경은 수가 대단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천일이 수를 낳고 그 위치는 북쪽, 괘는 감이니 우리 몸의 약물이 생기는 곳이다. 원정이 신에서 생기지만 고요히 모이지 않으면 생기지 못하므로 단을 만들려면 반드시 심기가 아래로 신에 교접하고 신이 받아 모은 뒤 변화하여 원정이 생긴다. 심기가 아래로 교접한다는 것은 신을 모아 기혈에 들어가게 할 뿐이다. 모은다는 것은 응집한다는 말이 아니다. 신은 지극히 영묘하여 하늘과 땅에 잠기는데 어떻게 응집하겠는가. 생각을 쉬고 신을 돌려 신이 심으로 돌아가 밖으로 달리지 않으면 기도 몸으로 돌아와 점차 기혈에 가라앉는다. 기에는 과연 구멍이 있는가. 보진자는 사람의 원양진기가 사지백해 사이에 퍼져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데 쓰이는데 어찌 작은 구멍 하나에 숨어 있겠느냐고 하였다. 한곳을 가리켜 생각을 집중하면 끝내 반드시 병이 되므로 단을 닦는 사람은 응신입기혈이라는 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금단의 대도는 신을 발생의 땅으로 빌릴 뿐이다. 기가 모이므로 기해, 깊고 아래에 있으므로 기혈, 금화가 생기므로 화라고 한다. 단을 만드는 데는 기가 여기에 가라앉으면 될 뿐 혼으로 생각을 집중한다는 뜻이 아니다. 원태허는 응신입기혈의 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시선을 거두고 듣는 것을 돌려 회광내조할 뿐이라고 하였다. 회광내조는 어떤 곳에 집착하여 뜻을 써서 비추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비워 신을 안으로 돌릴 뿐이다. 실은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고 비추되 비추는 바가 없지만 관조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처음의 공부는 어떠한가. 비결은 전일하여 부드러움에 이르는 것은 정식을 잊는 데 있고, 정식을 잊는 지름길은 마음과 숨이 서로 의지하는 데 있다고 한다. 마음과 숨이 서로 의지하면 잊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잊는다. 숨이 드나들며 소리가 나면 종이라 하고 드나듦이 다하지 않으면 체라 하며 왕래가 잦고 급하면 천이라 한다. 종·체·천 없이 이어져 있는 듯하고 써도 애쓰지 않으면 마음과 숨이 서로 의지함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조라는 한 글자를 버리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상근기의 선비는 생각이 일어남을 깨닫기만 하면 조식하여 잠깐 비추고 생각이 없으면 그치며 지나치게 뜻을 두어서는 안 된다. 뜻으로 비추면 비춤에 매이는 일이 많으므로 망 한 글자도 더해야 한다. 망과 조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잊을 때 마음은 맑아 비추지 않는 적이 없고 비출 때 티끌 하나 물들지 않아 잊지 않는 적이 없으니 잊음이 참된 비춤이다. 비추는 대로 혼침하고 흩어지는 경우는 평소 온갖 생각으로 몹시 어지러워 집에 주인이 없는데 갑자기 거두려 하니 붙잡아 안정시키지 못해 비출수록 어지러운 것이다. 어떻게 다스리는가. 망동을 깨닫자마자 망을 녹여 참됨으로 돌리되 망조의 공부 밖에서 돌아가겠는가. 이것이 바로 동정의 기틀이며 신이 나가자마자 거두라는 설명이면 충분하다. 비추어도 감당하지 못하면 강제하지 말고 우선 일을 처리하여 풀되 어지러움을 따라 흐르지도 말며 평화로워지기를 기다려 다시 잊고 비추어라. 수련이 여기에 이르면 다른 술법이 있겠는가. 선천의 기를 채취하여 금단의 단으로 삼을 뿐이다. 장자양은 채는 신부에서 진연을 캐는 것이고 취는 심전에서 진홍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종리 스승은 신 가운데 부모의 진기가 숨어 있으니 연이라 하며 연 가운데 진일의 물이 있으니 연중은이라 하였다. 신기가 간기에 전하고 간기가 심기에 전하며 심기가 스스로 머금어 액이 되니 사라 하고 액 가운데 정양의 기가 있으니 사리홍이라 한다. 전달될 때 법으로 제어하여 신기가 새지 않게 하고 기 가운데 진일의 물을 취하며 심액이 소모·흩어지지 않게 하고 액 가운데 정양의 기를 취한다. 캐지 않으면서 캐고 캐면서 캐지 않으며 취하지 않으면서 취하고 취하면서 취하지 않는 것이다. 진허백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채약이라고 한 것이다. 화후와 약물은 진화에는 본래 후가 없고 대약은 근수를 따지지 않는다. 백옥섬 스승은 심은 신이고 신은 화이며 기는 약이니 화로 약을 단련하여 단을 이루는 것은 곧 신으로 기를 다스려 도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다. 도를 이루면 신기가 혼융하여 영아가 형상을 드러낸다. 영아는 곧 나의 한 영묘한 진성으로 순양에 섞임이 없는 것뿐이다. 백옥섬은 또 마음 가운데 마음이 없고 생각 가운데 생각이 없으며 순정순기를 순양이라 한다고 하였다. 선가는 사람에게 신을 기르게 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호와 욕망에 빠져 한 칼에 둘로 끊지 못하므로 장생설을 마련하여 이끈다. 사람이 장생을 탐해야 하려 하여 한마음으로 수련양기하는데, 실은 연정연기를 빌려 마음을 매고 원신을 영묘하게 기르는 것이지 원신 밖에 정기가 따로 영아 하나를 맺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요하고 비움이 극에 이르고 무아가 지극해야 탈태신화한다. 이청암은 몸 밖에 몸이 있어도 특이하지 않으며 허공을 가루로 부수어야 전진이라고 하였다. 깊도다, 깊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