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問 : 紫陽師曰 , 煉氣者 , 煉元氣 , 非呼吸之氣 。 然則元氣惡乎在耶 ? 曰 : 元者混於杳冥恍惚之中 , 而實不離於呼吸之氣者也 。 朱紫陽曰 : 天地只是一氣 , 自今年冬至到明年冬至 , 唯這一個呼吸 , 呼是陽 , 吸是陰 。 玄同子曰 : 呼乃氣之出 , 故屬冬至之後 , 大則為天地一歲之呼吸 , 是以仙家千緒萬端 , 譬喻不過呼吸二字而已 。 問 : 人身一呼一吸謂之一息 , 而經言調真息 , 又言胎息 , 果呼吸之息歟 ? 曰 : 人身一日 , 一萬三千五百呼 , 一萬三千五百吸 , 一呼一吸 , 謂之一息 。《 丹經 》 曰 : 天地呼吸於內 , 故長久 。 人能效天地呼吸於內 , 亦可與天地同其長久 。 但常人之息以喉 , 則元氣亦隨之而出耳 。 且以調息之法言之 , 蓋調久則神愈凝 , 氣愈微 , 久之又久 , 則鼻息全無呼吸 , 止有微息在臍上往來 , 與嬰兒在母腹中一般 , 所以謂之胎息 。 乃神氣大定 , 自然而然 , 非有作為也 。 然此要在忘機絕念做工夫 , 故曰 : 心定則息自調 , 靜久則息自定 。 修煉至於胎息 , 而後氣歸元海 。 氣歸元海而壽無窮矣 。 世有教人抑息者 , 抑則勉強以制之 , 非自然之妙也 。《 丹經 》 曰 , 服氣不伏氣 , 伏氣非服氣 , 服氣不長生 , 長生須伏氣 。 蓋服者如魚吞水 , 入者即出 , 不能存也 ; 伏者如貓捕鼠 , 使氣不走泄 , 結而成丹即含光 , 所謂內氣不出 , 外氣不入也 。 或又問 : 紫陽師云煉神者 , 煉元神 , 非思慮之神 。 二者果有異乎 ? 曰 : 心也 , 性也 , 神也 , 一也 。 以其稟受於天 , 一點靈明謂之元神 ; 後來為情識所移 , 則此汩沒於其中 , 遂成思慮之神 。 其實元神渾渾淪淪 , 不虧不欠 。 人能迴光返照 , 去其情識 , 則此思慮者 , 莫非元神之妙用矣 。 或曰 : 精氣神之在人也 , 均謂之寶 , 均所當重也 。 然紫陽師以神為君 , 以精為主 。 夫人之有身 , 動靜語默 , 皆此氣為之運用 , 是故氣聚成形 , 氣散則絕命 , 氣獨非人之本乎 ? 曰 : 精神固非二物 , 神氣原不相離 , 三者一以貫之者也 。 而元精 、 元氣 、 元神主宰於其間 , 自然相生而不窮耳 。 故紫陽師云 : 元神見則元氣生 , 元氣生則元精產 。 是以元精煉交感精 , 以元氣煉呼吸氣 , 以元神煉思慮神 , 二物混成 , 與道合真 , 自然元精固而交感之精不漏 , 元氣住而呼吸之氣不出 , 元神全而思慮之神不起 。 修丹者 , 修此三者 , 故全也 。
어떤 이가 자양 스승은 기를 단련하는 것은 원기이지 호흡의 기가 아니라고 하였으니 원기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답하였다. 원은 아득하고 황홀한 가운데 섞여 있으나 실은 호흡의 기를 떠나지 않는다. 주자양은 천지가 한 기일 뿐이며 올해 동지부터 내년 동지까지 오직 한 호흡으로 날숨은 양이고 들숨은 음이라고 하였다. 현동자는 날숨은 기가 나오는 것이므로 동지 뒤에 속하며 크게는 천지 한 해의 호흡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가의 천 갈래 만 가지 비유도 호흡 두 글자를 넘지 않는다. 사람의 한 번 내쉬고 들이쉬는 것을 한 식이라 하는데 경에서 진식을 조절한다 하고 태식이라 하니 과연 호흡의 숨이냐고 물었다. 답하였다. 몸은 하루에 1만 3500번 내쉬고 1만 3500번 들이쉬며 한 번 내쉬고 들이쉬는 것을 한 식이라 한다. 《단경》은 천지가 안에서 호흡하므로 오래간다고 하였다. 사람이 천지를 본받아 안에서 호흡하면 천지와 오래감을 같이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목구멍으로 숨 쉬므로 원기도 따라 나간다. 조식법을 말하면 오래 조절할수록 신은 모이고 기는 미세해지며 오래고 또 오래면 코의 호흡이 전혀 없어지고 미세한 숨만 배꼽 위를 오가니 영아가 모태 안에 있는 것과 같아 태식이라 한다. 이는 신기가 크게 안정되어 자연히 그러한 것이지 인위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심을 잊고 생각을 끊는 데 공부해야 하므로 마음이 안정되면 숨이 저절로 조절되고 오래 고요하면 숨이 저절로 안정된다고 한다. 수련이 태식에 이른 뒤 기가 원해로 돌아가며 원해로 돌아가면 수명이 무궁하다. 세상에서 숨을 억누르라고 가르치지만 억누르면 억지로 제어하는 것이지 자연의 묘함이 아니다. 《단경》은 “복기하되 복기하지 않으며, 복기는 복기가 아니다. 복기로는 장생하지 못하고 장생하려면 복기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먹는 복은 물고기가 물을 삼키듯 들어오면 나가 보존되지 않는 것이고, 엎드리게 하는 복은 고양이가 쥐를 잡듯 기가 달아나지 않게 하여 맺어 단을 이루니 곧 함광의 이른바 내기는 나가지 않고 외기는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가 자양 스승의 연신은 원신을 단련하지 사려의 신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서 둘이 정말 다르냐고 물었다. 답하였다. 심·성·신은 하나이다. 하늘에서 받은 한 점의 영명을 원신이라 하고 뒤에 정식에 옮겨지면 그 가운데 빠져 사려의 신이 된다. 실은 원신은 혼연하여 모자람이 없다. 사람이 회광반조하여 정식을 없애면 사려하는 것도 모두 원신의 묘용이다. 어떤 이는 정기신이 모두 보배이며 중시해야 하는데 자양 스승은 신을 임금, 정을 주인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사람이 몸을 지녀 움직이고 고요하며 말하고 침묵하는 것은 모두 기가 운용하므로 기가 모이면 형체를 이루고 흩어지면 목숨이 끊기니 기만은 근본이 아니냐고 하였다. 답하였다. 정과 신은 본래 두 물건이 아니고 신과 기도 본래 떨어지지 않아 셋은 하나로 관통한다. 원정·원기·원신이 그 사이를 주재하여 자연히 서로 생기게 하며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자양 스승은 원신이 나타나면 원기가 생기고 원기가 생기면 원정이 나온다고 하였다. 원정으로 교감의 정을 단련하고 원기로 호흡의 기를 단련하며 원신으로 사려의 신을 단련하여 두 물건이 혼성하고 도와 참됨을 합하면 원정이 견고해져 교감의 정이 새지 않고 원기가 머물러 호흡의 기가 나가지 않으며 원신이 온전하여 사려의 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단을 닦는 것은 이 셋을 닦는 것이므로 온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