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志錄醫家言首黃帝內經隋志有全元起注內經已佚不可盡見今所傳惟唐王冰注本章句已非全氏之舊矣然古字古義尚有存者明以來傳刻本尤多淆亂庸師俗工習非成是莫可究詰績溪胡君荄甫精華小學中年多病留心方書得宋本內經用元熊氏本明道藏本及唐以前載籍勘正之多所發明如飲食有節起居有常不妄作勞全元起注本云飲食有常節起居有常度不妄不作君謂作與詐同月令毋或作為淫巧鄭注曰今月令作為為詐偽不妄與不作相對為文作古讀若胙上與者數度為韻下與俱去為韻王氏改不妄不作為不妄作勞是誤讀作為作為之作而以作勞連文殊不成義又不知持滿不時御神君謂時善也不時御神謂不善御神也小雅頍弁篇爾淆既時毛傳時善也又夫上古聖人之教下也皆謂之全元起注本云上古聖人之教也下皆為之君謂下皆為之言下皆化之也書梓材厥亂為民論衡效力篇引作厥率化民是為即化也作謂者為之借字王氏吳以謂為告謂之謂乃升下字於上句也字之上失其指矣又唯聖人從之故身無奇病君謂奇當為苛字形相似而誤苛亦病也古人自有復語字本作疴說文疴病也下文逆之則災害生從之則苛疾不起是謂得道上承此文而言則奇病之當作苛病明矣苛疾與災害對舉則苛亦為病明矣又道者聖人行之愚者佩之君謂佩讀為倍說文倍反也聖人行之愚者佩之謂聖人行道愚者倍道也荀子大略篇一佩易之注佩或為倍是古通用之證又故聖人傳精神君謂傳當為摶字之誤也摶與專同言聖人精神專一不旁騖也古書專一字多作摶繫辭傳其靜也專釋文專陸作摶昭二十五年左傳若琴瑟之專一釋文專本作摶史記秦始皇紀摶心揖志索隱摶古專字皆其證又此陰陽更勝之變病之形能也君謂能讀為態荀子天論篇耳目鼻口形能各有接而不相能也形能亦形態楚辭九章固庸態也論衡累害篇態作能漢書司馬相如傳君子之態史記徐廣本態作能皆古人以能為態之登並因刊正文字達其訓故別白精審渙然冰釋雖於全書尚未卒業然耑緒已立必有賡續之者壽曾嘗論醫家之有內經博大精深與儒家之五經同而無義疏之學海內學人而知醫者曷即王冰之注輔以全氏逸義用治疏法說其聲訓名物更採靈樞難經以下古醫家言疏通證明俾軒岐大業昭揭於世不為庸師俗工所蔀則君此書其先河矣因讀君書附論及之
『한서』 예문지는 의가의 말을 기록하며 『황제내경』을 첫머리에 두었다. 『수서』 경적지에는 전원기가 주석한 『내경』이 있으나 이미 없어져 전부 볼 수 없다. 지금 전하는 것은 당 왕빙의 주석본뿐으로 장구는 이미 전씨의 옛 모습이 아니다. 그래도 옛 글자와 뜻이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명 이후 전각본은 더욱 뒤섞여 평범한 의사와 속된 기술자들이 잘못에 익숙해져 옳다 하므로 따져 밝힐 수 없다. 적계의 호해보군은 소학에 정통하고 중년에 병이 많아 방서에 마음을 두었다. 송본 『내경』을 얻어 원의 웅씨본, 명의 도장본 및 당 이전 서적으로 교정하여 밝힌 것이 많다. 예컨대 “음식에 절도가 있고 기거에 일정함이 있으며 함부로 노고를 짓지 않는다”는 전원기 주석본에서 “음식에 일정한 절도가 있고 기거에 일정한 법도가 있으며 망령되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로 되어 있다. 군은 作이 詐와 같다고 하였다. 「월령」의 “음란하고 교묘한 것을 만들지 말라”에 정현은 지금 「월령」의 作為는 詐偽라고 주석했다. 不妄과 不作은 대구이고 作은 옛날 胙처럼 읽어 위로 者·數·度, 아래로 俱·去와 압운한다. 왕씨가 不妄不作을 不妄作勞로 고친 것은 作을 행위한다는 作으로 잘못 읽고 作勞를 잇댄 것으로 뜻이 되지 않는다. 또 “가득함을 지킬 줄 모르며 때맞춰 신을 다스리지 않는다”에서 군은 時는 잘한다는 뜻이며 不時御神은 신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소아·규변」의 爾淆既時(그대의 안주가 이미 좋다)에 모전은 時를 善이라 했다. 또 “상고 성인이 아래를 가르칠 때 모두 일렀다”는 전원기본에서 “상고 성인의 가르침을 아랫사람들이 모두 따랐다”로 되어 있다. 군은 下皆為之가 아랫사람들이 모두 교화된다는 말이라고 했다. 『서』 「자재(梓材)」의 厥亂為民(그 다스리는 이가 백성을 교화한다)을 『논형』 「효력」에서 厥率化民(그 통솔자가 백성을 교화한다)으로 인용했으니 為는 化이다. 謂로 쓴 것은 為의 가차이다. 왕씨는 謂를 일러 준다는 뜻으로 잘못 보아 下를 윗구절 也 위로 옮겨 뜻을 잃었다. 또 “성인만 이를 따르므로 몸에 기병이 없다”에서 군은 奇가 苛여야 하며 모양이 비슷하여 잘못되었다고 했다. 苛도 병으로 옛사람은 본래 뜻을 겹쳐 말하는 어법이 있었다. 본자는 疴이며 『설문』에서 疴는 병이라 했다. 아래의 “거스르면 재해가 생기고 따르면 가질이 일어나지 않으니 도를 얻었다 한다”는 이를 이어 말한 것이므로 奇病이 苛病이어야 함이 분명하다. 苛疾이 災害와 대거되니 苛도 병임이 분명하다. 또 “도는 성인이 행하고 어리석은 이는 패한다”에서 군은 佩를 倍로 읽고 『설문』의 倍는 거스름이라고 했다. 성인은 도를 행하고 우자는 도를 거스른다는 뜻이다. 『순자』 「대략」 一佩易之(한 번 거슬러 이를 바꾼다)의 주에서 佩가 혹 倍라고 했으니 옛 통용의 증거이다. 또 “성인이 정신을 전한다”에서 군은 傳이 摶의 오자라고 했다. 摶은 專과 같아 성인이 정신을 전일하게 하고 다른 데 힘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옛 책의 專一은 摶으로 많이 쓴다. 「계사전」 其靜也專(그 고요함은 전일하다)의 『석문』은 육씨가 專을 摶으로 썼다 했고, 소공 25년 『좌전』 若琴瑟之專一(거문고와 비파가 전일한 것처럼)의 『석문』은 專의 다른 본이 摶이라 했으며, 『사기』 「진시황기」 摶心揖志(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뜻을 모은다)의 『색은』은 摶이 옛 專자라 했으니 모두 증거이다. 또 “이는 음양이 번갈아 우세해지는 변화로 병의 형능이다”에서 군은 能을 態로 읽었다. 『순자』 「천론」의 “귀·눈·코·입의 형능은 각각 접하는 것이 있어 서로 능하지 못한다”의 形能도 形態이다. 『초사』 「구장」 固庸態也(본래 평상한 상태이다)를 『논형』 「누해」는 態 대신 能으로, 『한서』 「사마상여전」 君子之態(군자의 상태)를 『사기』 서광본은 態 대신 能으로 썼으니 모두 옛사람이 能을 態로 쓴 증거이다. 이와 같이 문자를 바로잡아 훈고에 통달하고 분별이 정밀하여 얼음이 풀리듯 명백하다. 비록 전서의 작업을 마치지 못했지만 단서가 세워졌으니 반드시 이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수증은 의가의 『내경』이 넓고 깊고 정밀함은 유가의 오경과 같은데 의소의 학문이 없다고 논한 적이 있다. 천하의 학자 중 의학을 아는 이가 어찌 왕빙주에 전씨의 흩어진 뜻을 보태고 소를 짓는 법으로 성훈과 명물을 설명하며 『영추』·『난경』 이하 옛 의가의 말을 모아 소통하고 증명하여 헌원·기백의 큰 업적을 세상에 밝히고 평범한 의사와 속된 기술자에게 가려지지 않게 하지 않겠는가. 군의 책이 그 선구이다. 군의 책을 읽고 논의를 덧붙인다.
光緒辛巳春三月癸亥朔儀徵劉壽曾識於冶城山館
광서 신사년 봄 3월 계해 초하루, 의징 유수증이 야성산관에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