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林億等校曰按王氏不解所以名素問之義全元起有說云素者本也問者黃帝問岐伯也方陳性情之源五行之本故曰素問元起雖有此解義未甚明按乾鑿度云夫有形者生於無形故有太易有太初有太始有太素太易者未見氣也太初者氣之始也太始者形之始也太素者質之始也氣形質具而疴瘵由是萌生故黃帝問此太素質之始也素問之名義或由此俞氏理初持素目錄序曰素問名義如素王之素黃帝以大神靈遍索先師所惜著之精光之論仍復請藏慎傳古人刑名八索九醫素索醫皆空也刑病皆空設之欲人不犯法不害性故曰湯液醪醴為而不用澍案全說固未甚明林說亦遷曲難通俞氏以索證素是矣而云素索醫皆空也雖本劉熙張衡為說見釋名及昭十二年左傳正義實亦未安今案素者法也鄭注士喪禮曰形法定為素宣十一年左傳曰不愆於素漢博陵太守孔彪碑曰遵王之素素皆謂法字通作索(六節藏象論注八素經林校曰素一作索書序八索昭十二年左傳八索釋文並曰索本作素昭十二年左傳是能讀三墳五典八索九醫賈逵曰八索三王之法)定四年傳疆以周索杜預曰索法也黃帝問治病之法於岐伯故其書曰素問素問者法問也猶後世揚雄著書謂之法言矣三墳五典八索九醫典索皆得訓法夫曰五法八法之問義無乖牾若如俞說則是八索為八空九醫為九空素問為空問不詞孰甚焉故特辨之
송의 임억 등은 교정하여 말했다. “왕씨는 『소문』이라는 이름의 뜻을 풀지 않았다. 전원기는 素는 근본이고 問은 황제가 기백에게 묻는 것이라 하여 성정의 근원과 오행의 근본을 진술하므로 『소문』이라 했지만 뜻이 충분히 밝지는 않다. 『건착도』에 형체 있는 것은 형체 없는 데서 생기므로 태역·태초·태시·태소가 있다고 했다. 태역은 기가 아직 보이지 않음, 태초는 기의 시작, 태시는 형의 시작, 태소는 질의 시작이다. 기·형·질이 갖추어지면 질병이 생겨나므로 황제가 이 태소, 질의 시작을 물은 것이니 이름이 혹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유이초씨의 「지소목록서」는 말한다. “소문의 뜻은 소왕의 素와 같다. 황제는 큰 신령으로 선사들이 아껴 둔 정광의 논을 두루 찾고 다시 간직하여 신중히 전하기를 청했다. 옛사람의 형명·팔색·구의에서 素·索·醫는 모두 비움이다. 형벌과 질병을 모두 가정하여 사람들이 법을 범하지 않고 본성을 해치지 않게 하려 한 것이므로 탕액과 술은 만들되 쓰지 않는다고 했다.” 주가 살피건대 전씨설은 충분히 밝지 않고 임씨설도 우회하여 통하기 어렵다. 유씨가 索으로 素를 증명한 것은 옳지만 素·索·醫가 모두 비움이라는 말은 유희·장형에 근거했어도〔『석명』과 소공 12년 『좌전정의』에 보인다〕 역시 편안하지 않다. 지금 살피면 素는 법이다. 정현의 「사상례」 주에 “형체의 법도가 정해진 것을 素라 한다”고 했고, 선공 11년 『좌전』에 “素를 어기지 않는다”, 한의 박릉태수 공표비에 “왕의 素를 따른다”고 했으니 모두 법이다. 索과 통한다.〔「육절장상론」 주의 『팔소경』에 임교는 素를 혹 索이라 쓴다고 했다. 『서』 서와 소공 12년 『좌전』의 八索에 『석문』은 索의 다른 본이 素라 했다. 그 『좌전』의 “삼분·오전·팔색·구의를 읽을 수 있다”에 가규는 팔색이 삼왕의 법이라 했다.〕 정공 4년 전의 “주의 索으로 경계를 정한다”에 두예는 索이 법이라 했다. 황제가 기백에게 병을 다스리는 법을 물었으므로 『소문』이라 하니 법을 묻는다는 뜻이며 후세 양웅이 책을 『법언』이라 이름한 것과 같다. 삼분·오전·팔색·구의의 典·索은 모두 법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섯 법과 여덟 법을 묻는다는 뜻에는 어긋남이 없다. 유씨설대로라면 팔색은 여덟 비움, 구의는 아홉 비움, 소문은 빈 물음이니 이보다 말이 안 되는 것이 있는가. 그러므로 특별히 변론한다.
人將失之邪
人將失之邪: 사람이 장차 이를 잃는가
今時之人年半百而動作皆衰者時世異邪人將失之邪澍案人將失之邪當作將人失之邪下文曰人年老而無子者材力盡邪將天數然也(也與邪古字通大戴禮五帝德篇請問黃帝者人邪抑非人邪樂記正義引邪作也史記張儀傳此公孫衍所謂邪秦策邪作也淮南精神篇其以我為此拘拘邪莊子大宗師篇邪作也是也上句用邪而下句用也者書傳中多有之昭二十六年左傳不知天之棄魯邪抑魯君有罪於鬼神故及此也史記淮南衡山傳公以為吳興兵是邪非也貨殖傳豈所謂素封者邪非也是也)徵四失論曰子年少智未及邪將言以雜合邪與此文同一例將猶抑也時世異邪將人失之邪謂時世異邪抑人失之邪材力盡邪將天數然也謂材力盡邪抑天數然邪子年少智未及邪將言以雜合邪謂子年少智未及邪抑言以雜合邪注以將為且失之楚策曰先生老悖乎將以為楚國襖祥乎漢書龔遂傳曰今欲使臣勝之邪將安之也(也與邪通)楚辭卜居曰吾寧悃悃款款樸以忠乎將送往勞來斯無窮乎寧誅鋤草茅以力耕乎將遊大人以成名乎以上將字亦併為詞之抑
“지금 사람은 쉰에 동작이 모두 쇠하는데 시대가 달라서인가, 사람이 장차 이를 잃는가?” 주가 살피건대 人將失之邪는 將人失之邪로 해야 한다. 아래에 “사람이 늙어 자식이 없는 것은 재질과 힘이 다해서인가, 아니면 천수가 그런가”라고 했다.〔也와 邪는 옛 글자에서 통한다. 『대대례』 「오제덕」의 “황제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이 아닌가”를 「악기정의」는 邪 대신 也로 인용했다. 『사기』 「장의전」 此公孫衍所謂邪(이것이 공손연이 말한 것인가)를 「진책」은 邪 대신 也로, 『회남자』 「정신」 其以我為此拘拘邪(그가 나를 이렇게 구속받는 사람으로 여기는가)를 『장자』 「대종사」는 邪 대신 也로 썼다. 앞구절에 邪, 뒷구절에 也를 쓰는 예도 서전에 많다. 소공 26년 『좌전』의 “하늘이 노를 버리는가, 아니면 노군이 귀신에게 죄가 있어 이렇게 되었는가”, 『사기』 「회남형산전」의 “공은 오의 거병이 옳다고 보는가 아닌가”, 「화식전」의 “이른바 소봉이라는 것인가 아닌가”가 그렇다.〕 「징사실론」의 “그대가 어려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가, 아니면 말을 섞어 맞추는가”도 같은 예이다. 將은 抑처럼 ‘아니면’이다. 時世異邪將人失之邪는 시대가 다른가 아니면 사람이 이를 잃는가, 材力盡邪將天數然也는 재질과 힘이 다했는가 아니면 천수가 그런가, 子年少智未及邪將言以雜合邪는 그대가 어려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가 아니면 말을 섞어 맞추는가라는 뜻이다. 주에서 將을 且로 본 것은 잘못이다. 「초책」의 “선생이 늙어 어그러졌는가, 아니면 초나라의 요상이라 여기는가”, 『한서』 「공수전」의 “지금 신이 그들을 이기게 하려는가, 아니면 편안하게 하려는가”〔也는 邪와 통함〕, 『초사』 「복거」의 “나는 정성스럽고 순박하게 충성할까, 아니면 떠나는 이를 보내고 오는 이를 위로하며 끝없이 할까”, “풀을 베고 힘써 농사지을까, 아니면 대인을 사귀어 명성을 이룰까”의 將도 모두 어사의 抑이다.
食飲有節起居有常不妄作勞
食飲有節起居有常不妄作勞: 음식에 절도가 있고 기거에 일정함이 있으며 함부로 노고를 짓지 않는다
上古之人其知道者法於陰陽和於術數食飲有節起居有常不妄作勞故能形與神俱而盡終其天年度百歲乃去食飲有節三句林校曰按全元起注本云飲食有常節起居有常度不妄不作太素同澍案全本楊本是也作與詐同(月令毋或作為淫巧以蕩上心鄭注曰今月令作為為詐偽荀子大略篇曰藍苴路作似知而非作亦詐字)法於陰陽和於術數相對為文飲食有常節起居有常度相對為文不妄與不作相對為文(徵四失論曰飲食之失節起居之過度又曰妄言作名亦以節度妄作對文)作古讀若胙上與者數度為韻下與俱去為韻王氏改飲食有常節起居有常度為食飲有節起居有常則句法虛實不對改不妄不作為不妄作勞是誤讀作為作為之作(楊上善太素注誤同)而以作勞連文殊不成義既乖經旨又昧古人屬詞之法且使有韻之文不能諧讀一舉而三失隨之甚矣古書之不可輕改也
“상고에 도를 알던 사람은 음양을 본받고 술수에 조화하며 음식에 절도가 있고 기거에 일정함이 있고 함부로 노고를 짓지 않아 형과 신을 함께 온전히 하여 천수를 마치고 백 살을 넘겨 떠났다.” 食飲有節 이하 세 구절에 임교는 전원기본이 “음식에 일정한 절도가 있고 기거에 일정한 법도가 있으며 망령되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이고 『태소』도 같다고 했다. 주가 살피건대 전본·양본이 옳다. 作은 詐와 같다.〔「월령」의 “음교를 지어 윗사람 마음을 흔들지 말라”에 정현은 지금 「월령」의 作為는 詐偽라고 했다. 『순자』 「대략」 藍苴路作似知而非의 作도 詐자이다.〕 法於陰陽과 和於術數, 飲食有常節과 起居有常度, 不妄과 不作은 각각 대구이다.〔「징사실론」의 “음식의 절도 잃음, 기거의 법도 넘음”과 “망령된 말로 이름을 짓는다”도 節·度, 妄·作을 대구로 쓴다.〕 作은 옛날 胙처럼 읽어 위로 者·數·度, 아래로 俱·去와 압운한다. 왕씨가 飲食有常節起居有常度를 食飲有節起居有常으로 고쳐 구법의 허실이 대칭하지 않고, 不妄不作을 不妄作勞로 고쳐 作을 행위한다는 作으로 잘못 읽었다.〔양상선의 『태소』 주도 같은 잘못이다.〕 作勞를 이어 뜻이 되지 않으니 경의 취지에 어긋나고 옛사람의 작문법에도 어두우며 운문을 조화롭게 읽지 못하게 했다. 한 번 고쳐 세 잘못이 따르니 옛 책을 가볍게 고쳐서는 안 됨이 심하다.
以耗散其真
以耗散其真: 소모하여 진을 흩는다
以欲竭其精以耗散其真林校曰按甲乙經耗作好澍案以耗散其真與以欲竭其精句義不對則皇甫本作好是也好讀耆好之好好亦欲也(凡經傳言耆好即耆欲言好惡即欲惡孟子告子篇所欲有甚於生者中論天壽篇作所好荀子不苟篇欲利而不為所非韓詩外傳作好利)作耗者聲之誤耳王注謂輕用曰耗乃臆說不可通
“욕망으로 정을 고갈시키고 소모하여 진을 흩는다.” 임교는 『갑을경』에 耗가 好라고 했다. 주가 살피건대 以耗散其真은 以欲竭其精과 구절 뜻이 맞지 않으므로 황보본의 好가 옳다. 好는 기호의 好로 읽으며 욕망이다.〔경전에 耆好라 한 것은 耆欲, 好惡이라 한 것은 欲惡이다. 『맹자』 「고자」의 “원하는 것이 삶보다 심하다”를 『중론』 「천수」는 所欲 대신 所好라 했고, 『순자』 「불구」의 “이익을 원하되 그른 것을 하지 않는다”를 『한시외전』은 欲利 대신 好利라 했다.〕 耗로 쓴 것은 소리의 잘못일 뿐이다. 왕주가 가볍게 쓰는 것을 耗라 한 것은 억설로 통하지 않는다.
不時御神
不時御神: 신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
不知持滿不時御神林校曰按別本時作解澍案時字是解字非也時善也不時御神謂不善御神也小雅頍弁篇爾淆既時毛傳曰時善也廣雅同解與時形聲均不相近無緣致誤亦無由得通蓋後人不明時字之訓而妄改之且善亦有解義學記相觀而善之謂摩正義曰善猶解也是也愈不必改為解矣
“가득함을 지킬 줄 모르고 신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 임교는 별본에 時가 解라 했다. 주가 살피건대 時가 옳고 解는 그르다. 時는 善이므로 不時御神은 신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소아·규변」 爾淆既時(그대의 안주가 이미 좋다)에 모전은 時를 善이라 했고 『광아』도 같다. 解와 時는 형태와 소리가 모두 가깝지 않아 잘못될 이유도 통할 까닭도 없다. 후인이 時의 풀이를 몰라 함부로 고친 것이다. 게다가 善에도 解의 뜻이 있다. 「학기」의 “서로 보고 잘하게 함을 마라 한다”에 정의는 善이 解와 같다고 했으니 더욱 解로 고칠 필요가 없다.
天上古聖人之教下也皆謂之
天上古聖人之教下也皆謂之: 천[天], 상고 성인이 아래를 가르칠 때 모두 일렀다
林校曰按全元起注本云上古聖人之教也下皆為之太素千金同楊上善云上古聖人使人行者身先行之為不言之教不言之教勝有言之教故下百姓仿行者眾故曰下皆為之澍案全本楊本孫本及楊說是也夫上古聖人之教也(句)下皆為之(句)下皆為之言下皆化之也書梓材厥亂為民論衡效力篇引作厥率化民是為即化也王本作謂者為之借字耳僖五年左傳曰一之謂甚其可再乎六微旨大論曰升已而降降者謂天降已而升升者謂地昭元年傳曰此之謂多矣若能少此吾何以得見十年傳曰佻之謂甚矣而一用之二十一年傳曰登之謂甚吾又重之周語曰守府之謂多胡可興也晉語曰八年之謂多矣何以能久大戴禮少間篇曰何謂其不同也(此從元本楚策曰人皆以謂公不善於富摯管子霸言篇曰故貴為天子富有天下而我不謂貪者)韓詩外傳曰王欲用女何謂辭之又曰何謂而泣也淮南人間篇曰國危而不安患結而不解何謂貴智列女傳仁智傳曰知此謂誰新序雜事篇曰何謂至於此也漢書文帝紀曰是謂本末者無以異也以上並以謂為為為與謂一聲之轉故二字往往通用說苑君道篇則何為不具官乎晏子春秋問篇為作謂呂氏春秋精輸篇胡為不可淮南道應篇為作謂文子微明篇居知所為淮南人間篇為作謂(此從道藏本)漢書高帝紀酈食其為里監門英布傳胡為廢上計而出下計史記為並作謂正如素問下皆為之而王氏所據本為字作謂蓋假借皆主乎聲語辭之為通作謂行為之為通作謂作為之為通作謂故化為之為亦通作謂王氏不達誤以謂為告謂之謂乃升下字於上句也字之上以上古聖人之教下也為句皆謂之三字下屬為句失其指矣
임교는 전원기본이 “상고 성인의 가르침을 아랫사람들이 모두 따랐다”이고 『태소』·『천금』도 같다고 했다. 양상선은 상고 성인이 남에게 행하게 할 것은 자신이 먼저 행해 말없는 가르침을 삼았고, 말없는 가르침이 말 있는 가르침보다 나으므로 아래 백성 중 본받는 이가 많아 下皆為之라 했다고 설명했다. 주가 살피건대 전본·양본·손본과 양씨설이 옳다. “夫上古聖人之教也.”에서 끊고 “下皆為之.”에서 끊는다. 下皆為之는 아랫사람이 모두 교화된다는 말이다. 『서』 「자재」 厥亂為民(그 다스리는 이가 백성을 교화한다)을 『논형』 「효력」에서 厥率化民(그 통솔자가 백성을 교화한다)으로 인용했으니 為는 化이다. 왕본의 謂는 為의 가차일 뿐이다. 희공 5년 『좌전』 “한 번도 심한데 두 번 할 수 있겠는가”, 「육미지대론」 “오름이 그치면 내리며 내리는 것이 하늘이고 내림이 그치면 오르며 오르는 것이 땅이다”, 소공 원년 전 “이것이 많은 것이니 줄일 수 있다면 내가 어찌 만날 수 있겠는가”, 10년 전 “가벼움이 심한데 한 번 쓰다니”, 21년 전 “높임이 심한데 내가 다시 더한다”, 「주어」 “창고를 지킴도 많은데 어찌 일으키겠는가”, 「진어」 “8년도 많은데 어찌 오래하겠는가”, 『대대례』 「소간」 “어찌 같지 않은가”〔이는 원본을 따랐다. 「초책」에는 “사람들이 모두 공이 부지에게 잘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관자』 「패언」에는 “천자의 존귀함과 천하의 부유함을 지녔으나 나를 탐욕스럽다 하지 않는 것은”이라 했다〕, 『한시외전』 “왕이 그대를 쓰려는데 어찌 사양하는가”와 “어찌하여 우는가”, 『회남자』 「인간」 “나라가 위태로워 편안하지 못하고 근심이 맺혀 풀리지 않는데 어찌 지혜를 귀히 여기겠는가”, 『열녀전』 「인지」 “이를 아는 이는 누구인가”, 『신서』 「잡사」 “어찌 여기에 이르렀는가”, 『한서』 「문제기」 “본말에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는 모두 謂를 為로 썼다. 為·謂는 한 소리의 전이이므로 자주 통용된다. 『설원』 「군도」의 “그렇다면 어찌 관리를 갖추지 않는가”를 『안자춘추』 「문」은 為 대신 謂로 썼고, 『여씨춘추』 「정수」의 “어찌 불가한가”를 『회남자』 「도응」은 謂로 썼다. 『문자』 「미명」 居知所為(머물면서 해야 할 바를 안다)를 『회남자』 「인간」도 謂로 썼다.〔이는 도장본을 따랐다.〕 『한서』 「고제기」의 “역이기가 마을 문지기가 되었다”와 「영포전」의 “어찌 상책을 버리고 하책을 내는가”를 『사기』는 모두 為 대신 謂로 썼다. 이는 『소문』 下皆為之의 為가 왕씨의 근거본에서 謂로 된 것과 같다. 가차는 모두 소리를 주로 하여 어사의 為, 행위의 為, 작위의 為가 모두 謂와 통하므로 교화의 為도 謂와 통한다. 왕씨가 이를 몰라 謂를 고한다는 뜻으로 잘못 보아 下를 윗구절 也 위로 옮겨 上古聖人之教下也를 한 구로 삼고 皆謂之 세 글자를 아래에 붙여 뜻을 잃었다.
恬惔虛無
恬惔虛無: 담담하고 허무하다
恬惔元熊宗立本明道藏本均作恬憺澍案一切經音義十六引蒼頡篇曰惔恬也是惔與憺同(憺之為惔猶澹之為淡文選潘安仁金谷集詩綠池汎淡淡李善曰淡與澹同)然釋音作恬憺則宋本本作恬憺陰陽應象大論樂恬憺之能(藏本作恬憺憺亦與澹同淮南俶真篇注憺定也後漢書馮衍傳注澹定也澹與淡同故淮南泰族篇靜漠恬惔其字亦作淡)移精變氣論此恬憺之世亦並作恬憺
恬惔은 원 웅종립본과 명 도장본에서 모두 恬憺이다. 주가 살피건대 『일체경음의』 16이 『창힐편』을 인용하여 惔은 恬이라 했으니 惔은 憺과 같다.〔憺이 惔이 되는 것은 澹이 淡이 되는 것과 같다. 『문선』 반안인 「금곡집시」 綠池汎淡淡(푸른 못물이 잔잔히 넘실거린다)에 이선은 淡이 澹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석음에 恬憺이라 했으니 송본의 본래 글자도 恬憺이다. 「음양응상대론」의 樂恬憺之能(담담한 상태를 즐긴다)〔도장본도 恬憺이다. 憺은 澹과도 같아 『회남자』 「숙진」 주는 憺이 안정됨, 『후한서』 「풍연전」 주는 澹이 안정됨이라 했다. 澹은 淡과 같으므로 『회남자』 「태족」 靜漠恬惔(고요하고 담담하다)의 글자는 淡으로도 쓴다〕과 「이정변기론」 此恬憺之世(이 담담한 세상)도 모두 恬憺이다.
其民故曰樸
其民故曰樸: 그 백성을 그러므로 순박하다 한다
故美其食任其服樂其俗高下不相慕其民故曰樸林校曰按別本曰作日(宋本曰上衍云字今據熊本藏本刪)澍按曰字義不可通別本作日是也日與孟子盡心篇民日遷義之日同義言其民故日以樸也作曰者形似之誤大戴禮曾子天圓篇故火日外景而金水內景淮南天文篇日作曰誤與此同
“그 음식을 맛있게 여기고 옷을 편히 입고 풍속을 즐기며 높고 낮은 이가 서로 부러워하지 않으니 그 백성을 그러므로 순박하다 한다.” 임교는 별본에 曰이 日이라 했다.〔송본은 曰 위에 云이 덧붙었는데 지금 웅본·도장본에 따라 지운다.〕 주가 살피건대 曰은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별본의 日이 옳다. 日은 『맹자』 「진심」 民日遷義(백성이 날로 의로 옮겨 간다)의 日과 같아 백성이 날로 순박해진다는 말이다. 曰은 형태가 비슷하여 생긴 잘못이다. 『대대례』 「증자천원」 故火日外景而金水內景(그러므로 불과 해는 밖을 비추고 금속과 물은 안을 비춘다)을 『회남자』 「천문」은 日 대신 曰로 썼으니 같은 잘못이다.
發始墮 發墮 鬚眉墮
發始墮·發墮·鬚眉墮: 머리털이 처음 빠짐·머리털 빠짐·수염과 눈썹 빠짐
五七陽明脈衰面始焦發始墮又下文曰五八腎氣衰發墮齒槁長刺節論曰病大風骨節重鬚眉墮(熊本藏本作墯)王於墮字均無注澍案墮本作鬌說文鬌發墮也字通作墮墮之為言禿也墨子修身篇華髮墮顛而猶弗捨墮顛即禿頂今俗語猶然發禿謂之墮鬚眉禿謂之墮毛羽禿謂之毻 。 (文選江賦產毻積羽李善曰⿰羊莫與毻同引字書⿰羊莫落毛也郭璞方言注曰鬌毛物漸落去之名)角禿謂之隨(呂氏春秋至忠篇荊莊哀王獵於雲夢射隨兕中之)尾禿謂之橢(淮南說山篇髡屯犁牛既科以橢高誘曰科無角橢無尾)草木葉禿謂之墮(脈解篇草木畢落而墮大元窮次四土不和木科橢範望曰科橢枝葉不布)聲義並同也
“오칠에는 양명맥이 쇠하여 얼굴이 마르고 머리털이 처음 빠진다.” 아래에는 “오팔에는 신기가 쇠하여 머리털이 빠지고 이가 마른다”, 「장자절론」에는 “대풍을 앓으면 골절이 무겁고 수염·눈썹이 빠진다”고 했다.〔웅본·도장본은 墯이다.〕 왕씨는 墮에 모두 주가 없다. 주가 살피건대 본자는 鬌이며 『설문』은 머리털이 빠지는 것이라 했다. 墮와 통하며 墮는 禿, 곧 벗겨짐이다. 『묵자』 「수신」의 “흰 머리털이 정수리에서 빠져도 그치지 않는다”에서 墮顛은 禿頂이니 지금 속어도 같다. 머리털이 벗겨짐, 수염·눈썹이 벗겨짐은 墮, 털과 깃털이 벗겨짐은 毻라 한다.〔『문선』 「강부」 產毻積羽(털갈이한 털이 생기고 깃털이 쌓인다)에 이선은 ⿰羊莫이 毻와 같다 하고 자서를 인용해 털 빠짐이라 했다. 곽박 『방언』 주는 鬌가 털 가진 것이 점차 빠지는 이름이라 했다.〕 뿔이 벗겨짐은 隨라 한다.〔『여씨춘추』 「지충」에 형 장애왕이 운몽에서 사냥하며 隨兕를 쏘아 맞혔다고 했다.〕 꼬리 없음은 橢라 한다.〔『회남자』 「설산」 髡屯犁牛既科以橢(곤둔한 얼룩소가 뿔도 없고 꼬리도 없다)에 고유는 科는 뿔 없음, 橢는 꼬리 없음이라 했다.〕 초목의 잎이 벗겨짐은 墮라 한다.〔「맥해」의 초목이 모두 떨어져 墮한다는 말과 『태원』 「궁」 차사 土不和木科橢(토기가 조화롭지 않아 나무의 가지와 잎이 벗겨진다)에 범망은 科橢가 가지와 잎이 펼쳐지지 않음이라 했다.〕 소리와 뜻이 모두 같다.
此雖有子男不過盡八八女不過盡七七
此雖有子男不過盡八八女不過盡七七: 비록 자식이 있어도 남자는 여덟 번 여덟을, 여자는 일곱 번 일곱을 다 넘지 않는다
帝曰有其年已老而有子者何也岐伯曰此其天壽過度氣脈常通而腎氣有餘也此雖有子男不過盡八八女不過盡七七而天地之精氣皆竭矣王注此雖有子三句曰雖老而生子子壽亦不能過天癸之數澍案此謬說也詳岐伯之對謂年老雖亦有子者然大要生子常期男子在八八以前女子在七七以前故曰此雖有子男不過盡八八女不過盡七七而天地之精氣皆竭矣男不過盡八八之男即承上文之丈夫而言女不過盡七七之女即承上文之女子而言並非謂年老者所生之子何得雲子壽亦不過天癸之數乎且老年之子必不壽亦無是理
황제가 “나이 이미 늙어 자식이 있는 이는 무엇 때문인가” 묻자 기백은 “천수가 기준을 넘고 기맥이 늘 통해 신기가 남기 때문이다. 비록 자식이 있어도 남자는 팔팔, 여자는 칠칠을 다 넘지 않아 천지의 정기가 모두 고갈된다”고 답했다. 왕주는 此雖有子 이하 세 구절을 “늙어서 자식을 낳아도 자식의 수명 또한 천계의 수를 넘지 못한다”고 했다. 주가 살피건대 잘못된 설이다. 기백의 답은 늙어서도 자식이 있는 이가 있지만 출산의 통상 시기는 대체로 남자 64세 이전, 여자 49세 이전이라는 뜻이므로 이처럼 말한 것이다. 男不過盡八八의 男은 위의 丈夫, 女不過盡七七의 女는 위의 女子를 이어 말하며 늙은 사람이 낳은 자식을 말하지 않는다. 어찌 자식 수명도 천계의 수를 넘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노년에 낳은 자식이 반드시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이치도 없다.
真人
진인
余聞上古有真人者提挈天地把握陰陽王注曰真人謂成道之人也澍案注義泛而不切且成與全義相因無以別於下文淳德全道之至人今案真人謂化人也說文曰真仙人變形而登天也從匕(匕即化之本字)從目從匕八所乘載也是其義矣
“상고에 진인이 있어 천지를 이끌고 음양을 장악했다고 들었다.” 왕주는 진인을 도를 이룬 사람이라 했다. 주가 살피건대 뜻이 넓고 꼭 맞지 않으며 成과 全은 뜻이 서로 이어져 아래의 “덕을 순박하게 하고 도를 온전히 한 지인”과 구별되지 않는다. 지금 살피면 진인은 변화한 사람이다. 『설문』은 真을 신선이 형체를 바꾸어 하늘에 오르는 것이라 하며 匕〔化의 본자〕·目·匕를 따르고 八은 올라타 싣는 것이라 했다. 그것이 그 뜻이다.
至人
지인
中古之時有至人者淳德全道王注曰全其至道故曰至人林校引楊上善曰積精全神能至於德故稱至人澍案楊王二注皆望下文生義不思下文言淳德全道不言至德至道殆失之矣今案至者大也爾雅曰晊大也郭璞作至釋文曰晊本又作至易彖傳曰大哉乾元至哉坤元鄭注哀公問曰至矣言至大也高誘注秦策曰至猶大也注呂氏春秋求人篇曰至大也是至人者大人也乾文言曰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此文有至人者淳德全道意義相似莊子天下篇曰不離於真謂之至人不離於真猶下文言亦歸於真人也故居真人之次論語曰畏大人畏聖人之言故在聖人之上
“중고에는 지인이 있어 덕을 순박하게 하고 도를 온전히 했다.” 왕주는 지극한 도를 온전히 하므로 지인이라 했고 임교는 양상선의 “정을 쌓고 신을 온전히 하여 덕에 이를 수 있으므로 지인이라 한다”를 인용했다. 주가 살피건대 둘 다 아래 글을 보고 뜻을 만들었지만 아래는 淳德全道라 했지 至德至道라 하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至는 大이다. 『이아』는 晊이 크다는 뜻이라 했는데 곽박은 至로 썼고 『석문』은 晊의 다른 본이 至라 했다. 『역』 단전의 “크도다 건원, 지극하도다 곤원”, 정현 「애공문」 주의 “至矣는 지극히 크다는 말”, 고유 「진책」 주의 “至는 大와 같다”, 『여씨춘추』 「구인」 주의 “至는 크다”가 그러하니 지인은 대인이다. 「건문언」의 “대인은 천지와 덕을 합한다”는 이 글의 “지인이 덕을 순박하게 하고 도를 온전히 한다”와 뜻이 비슷하다. 『장자』 「천하」의 “참됨을 떠나지 않는 이를 지인이라 한다”는 아래의 “또한 진인으로 돌아간다”와 같으므로 진인 다음에 놓인다. 『논어』는 “대인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을 두려워한다”고 했으므로 성인 위에 놓인다.
使志若伏若匿若有私意若已有得
使志若伏若匿若有私意若已有得: 뜻을 엎드리고 숨은 듯, 사사로운 뜻이 있는 듯, 이미 얻은 것이 있는 듯하게 한다
熊本藏本若匿作若匪注云今詳匪字當作匿澍案高誘注呂氏春秋論人篇曰匿猶伏也經以匿與伏並舉又與意得相韻(意古或讀若億論語先進篇億則屢中漢書貨殖傳億作意明夷象傳獲心意也與食則得息國則為韻管子戒篇身在草茅之中而無懾意與惑色為韻呂氏春秋重言篇將以定志意也與翼則為韻楚辭天問何所意焉與極為韻秦之眾刻石文承順聖意與德服極則式為韻)其為匿字無疑王注生氣通天論引此亦作匿尤其明證也作匪者乃北宋以後之誤本何以明之匿與匪草書相似故匿誤為匪一也宋本正作匿生氣通天論注引同則今詳匪字當作匿之注其非王注可知二也今詳上無新校正三字又非林校可知三也蓋南宋時有此作匪之本讀者旁記今詳匪當作匿七字傳寫錯入注內而熊本藏本遂並沿其誤耳
웅본·도장본은 若匿이 若匪이고 주에 “지금 자세히 보니 匪는 匿이어야 한다”고 했다. 주가 살피건대 고유의 『여씨춘추』 「논인」 주는 匿이 伏과 같다고 했다. 경은 匿과 伏을 나란히 들고 意·得과 압운한다.〔意는 옛날 혹 億처럼 읽었다. 『논어』 「선진」 億則屢中을 『한서』 「화식전」은 億 대신 意로 썼다. 명이 상전의 獲心意也(마음의 뜻을 얻음이다)는 食·則·得·息·國·則과, 『관자』 「계」 身在草茅之中而無懾意(몸이 풀 속에 있어도 두려운 뜻이 없다)는 惑·色과, 『여씨춘추』 「중언」 將以定志意也(장차 뜻을 정하려는 것이다)는 翼·則과, 『초사』 「천문」 何所意焉(무엇을 뜻하였는가)은 極과, 진의 여러 각석문 承順聖意(성인의 뜻을 받들어 따른다)는 德·服·極·則·式과 압운한다.〕 따라서 匿임이 틀림없고 왕주의 「생기통천론」 인용도 匿이니 더 명백하다. 匪는 북송 이후 잘못된 본이다. 어떻게 아는가. 匿·匪는 초서가 비슷하여 잘못되기 쉬운 것이 첫째이다. 송본과 「생기통천론」 주의 인용은 모두 匿이므로 “지금 자세히 보니 匪는 匿이어야 한다”는 말이 왕주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 둘째이다. 今詳 위에 新校正 세 글자가 없으므로 임교도 아님을 아는 것이 셋째이다. 남송 때 匪로 된 본에 독자가 곁에 今詳匪當作匿 일곱 글자를 썼는데 전사하면서 주 안에 잘못 들어가 웅본·도장본이 그 잘못을 이었을 뿐이다.
又案若有私意當本作若私有意寫者誤倒也春秋繁露循天之道篇曰心之所之謂意鄭注王制曰意思念也若私有意謂若私有所念也已亦私也鄭注特牲饋食禮記曰私臣自已所闢除者注有司徹曰私人家臣已所自謁除也注曲禮下曰私行謂以已事也注聘義曰私覿私以己禮覿主國之君是己猶私也若己有得謂若私有所得也若私有意若己有得相對為文若如今本則句法參差不協矣生氣通天
또 살피건대 若有私意는 본래 若私有意여야 하며 필사자가 잘못 뒤집었다. 『춘추번로』 「순천지도」는 마음이 가는 것을 意라 했고 정현의 「왕제」 주는 意가 생각함이라 했다. 若私有意는 사사로이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己도 私이다. 정현의 「특생궤식례기」 주는 私臣이 자기가 불러 임명한 이라 하고, 「유사철」 주는 私人이 가신으로 자기가 청하여 제수한 이라 하며, 「곡례하」 주는 私行이 자기 일로 행함이라 하고, 「빙의」 주는 私覿이 사사로이 자기 예물로 주국의 임금을 만남이라 했다. 그러므로 己는 私와 같다. 若己有得은 사사로이 얻은 바가 있는 듯함이다. 若私有意와 若己有得은 대구이나 현본대로라면 구법이 들쭉날쭉하여 맞지 않는다. 「생기통천
論注所引亦誤
론」 주에서 인용한 것도 잘못이다.
若有私意當作若私有意是也私不必解作己引鄭義尚牽強按若私有意申上若伏若已有得申上若匿伏者初無所有而動於中故曰私有意匿者已為所有而居於內故曰已有得(趙之謙附記)
若有私意를 若私有意로 해야 한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私를 반드시 己로 풀 필요는 없으며 정현의 뜻을 인용한 것은 견강하다. 살피건대 若私有意는 위의 若伏을, 若已有得은 위의 若匿을 거듭 밝힌다. 伏은 처음 아무것도 없으나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므로 사사로이 뜻이 있다고 했고, 匿은 이미 소유한 것이 안에 머무는 것이므로 이미 얻음이 있다고 했다.〔조지겸의 부기〕
名木
名木: 명목
則名木多死王注曰名謂名果珍木澍案注未達名字之義作疴說文疴病也引五行傳曰時即有口疴或作痾廣雅痾病也洪範五行傳時則有下體生上之痾鄭注曰痾病也通作苛呂氏春秋審時篇身無苛殃高誘曰苛病至真要大論曰夫陰陽之氣清靜則生化治動則苛疾起管子小問篇曰除君苛疾苛疾即苛病也(疾與病析言則異渾言則通)下文故陰陽四時者萬物之終始也死生之本也逆之則災害生從之則苛疾不起是謂得道上承此文而言則奇病之當作苛病明矣苛疾與災害對舉則苛亦為病明矣王注於本篇之苛疾曰苛者重也於至真要大論之苛疾曰苛重也不知此所謂苛疾與生氣通天論雖有大風苛毒六元正紀大論暴過不生苛疾不起之苛異義(六元正紀大論注苛重也)彼以苛毒與大風相對與暴過相對此則苛疾與災害對與生化對文變而義自殊言各有當混而一之則通於彼者必閡於此矣
“그러면 명목이 많이 죽는다.” 왕주는 名을 이름난 과실과 진귀한 나무라 했다. 주가 살피건대 주는 名자의 뜻을 알지 못했다. 疴로 쓴다. 『설문』은 疴가 병이라 하고 「오행전」의 “때에 구아가 있다”를 인용했다. 혹 痾로 쓰며 『광아』도 痾를 병이라 했다. 『홍범오행전』의 “때에 하체가 위에서 생기는 아가 있다”에 정주도 痾를 병이라 했다. 苛와 통하니 『여씨춘추』 「심시」 身無苛殃(몸에 병과 재앙이 없다)에 고유는 苛가 병이라 했다. 「지진요대론」은 “음양의 기가 청정하면 생화가 다스려지고 움직이면 가질이 일어난다”, 『관자』 「소문」은 “임금의 가질을 제거한다”고 했다. 苛疾은 苛病이다.〔疾과 病은 나누어 말하면 다르나 통틀어 말하면 통한다.〕 아래에 “음양사시는 만물의 종시이며 사생의 근본이다. 거스르면 재해가 생기고 따르면 가질이 일어나지 않으니 도를 얻었다 한다”고 한 것은 위의 글을 이어 말하므로 奇病은 苛病이어야 함이 분명하다. 苛疾이 災害와 대거되니 苛도 병임이 분명하다. 왕주는 이 편의 苛疾에서 苛를 중함이라 하고 「지진요대론」에서도 중함이라 하였다. 그러나 여기의 苛疾은 「생기통천론」 雖有大風苛毒(비록 큰 바람과 심한 독이 있어도), 「육원정기대론」 暴過不生苛疾不起(사나운 허물이 생기지 않고 심한 질병이 일어나지 않는다)의 苛와 뜻이 다름을 몰랐다.〔「육원정기대론」 주는 苛가 중함이라 한다.〕 저곳은 苛毒이 大風·暴過와 상대하고 이곳은 苛疾이 災害·生化와 상대한다. 글이 바뀌면 뜻도 달라 말마다 해당함이 있는데 하나로 섞으면 저기서 통하는 것이 여기서는 막힌다.
肺氣焦滿
肺氣焦滿: 폐기가 마르고 그득하다
林校曰按焦滿全元起本作進滿甲乙太素作焦滿澍案作焦者是也全本作進乃形似之訛焦與痿論肺熱葉焦之焦同義滿與痹論肺痹者煩滿之滿同義王注以焦為上焦肺氣上焦滿頗為不辭焦滿與下濁沉對文若焦為上焦則與下文不對且上焦亦不得但言焦斯為謬矣
임교는 焦滿이 전원기본에서 進滿이며 『갑을』·『태소』는 焦滿이라 했다. 주가 살피건대 焦가 옳고 전본의 進은 형태가 비슷한 오자이다. 焦는 「위론」 肺熱葉焦(폐가 뜨거워 폐엽이 마른다)의 焦와 같고 滿은 「비론」 肺痹者煩滿(폐비는 번거롭고 그득하다)의 滿과 같다. 왕주가 焦를 상초라 하여 폐기가 상초에 가득하다고 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焦滿은 아래 濁沉과 대구이니 焦가 상초라면 맞지 않으며 상초를 焦만으로 말할 수도 없으므로 잘못이다.
腎氣獨沉
腎氣獨沉: 신기만 가라앉는다
林校曰詳獨沉太素作沉濁(藏本作獨)澍案獨與濁古字通秋官序官壺涿氏鄭司農注獨讀為濁又蟈氏疏獨音與涿相近書亦或為濁然則獨沉沉濁義得兩通
임교는 獨沉이 『태소』에서 沉濁이라 했다.〔도장본은 獨이다.〕 주가 살피건대 獨과 濁은 옛 글자에서 통한다. 「추관」 서관의 호탁씨에 정사농은 獨을 濁으로 읽으라 했고, 괵씨 소는 獨의 음이 涿과 가까워 책에 혹 濁으로도 쓴다고 했다. 그렇다면 獨沉과 沉濁은 뜻이 모두 통한다.
愚者佩之
愚者佩之: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찬다
道者聖人行之愚者佩之澍案佩讀為倍說文倍反也荀子大略篇教而不稱師謂之倍楊倞注曰倍者反逆之名也字或作偝(見坊記投壺)作背(經典通以背為倍)聖人行之愚者佩之謂聖人行道愚者倍道也行與倍正相反故下遂云從陰陽則生逆之則死從之則治逆之則亂從與逆亦相反從即行(廣雅從行也)逆即倍也(見上荀子注)佩與倍古同聲而通用釋名曰佩倍也言其非一物有倍二也是古同聲之證荀子大略篇一佩易之注曰佩或為倍是古通用之證王注謂聖人心合於道故勤而行之愚者性守於迷故佩服而已此不得其解而曲為之說古人之文恆多假借不求諸聲音而索之字畫宜其詰鞫為病矣
“도는 성인이 행하고 어리석은 이는 佩한다.” 주가 살피건대 佩는 倍로 읽는다. 『설문』은 倍가 거스름이라 했고 『순자』 「대략」의 “가르치면서 스승을 칭하지 않음을 倍라 한다”에 양량은 倍가 반역의 이름이라 했다. 혹 偝로〔「방기」·「투호」 참조〕, 背로도 쓴다.〔경전은 背를 倍로 통용한다.〕 성인은 도를 행하고 우자는 도를 거스른다는 뜻이다. 行과 倍는 정반대이므로 아래에 “음양을 따르면 살고 거스르면 죽으며 따르면 다스려지고 거스르면 어지럽다”고 했다. 從과 逆도 반대이며 從은 行〔『광아』는 從이 行이라 함〕, 逆은 倍이다.〔위의 『순자』 주 참조〕 佩·倍는 옛날 소리가 같아 통용했다. 『석명』은 佩가 倍이며 한 물건이 아니라 두 배라는 뜻이라 했으니 동음의 증거이다. 『순자』 「대략』 一佩易之(한 번 거슬러 이를 바꾼다) 주의 “佩는 혹 倍이다”는 통용의 증거이다. 왕주가 성인은 마음이 도와 합하므로 힘써 행하고 우자는 성질이 미혹을 지켜 차고 있을 뿐이라 한 것은 해석을 얻지 못해 억지로 만든 설이다. 고문에는 가차가 많아 성음에서 구하지 않고 자획에서 찾으니 힐굴하여 문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傳精神
傳精神: 정신을 전한다
故聖人傳精神服天氣而通神明澍案傳字義不可通王注謂精神可傳惟聖人得道者乃能爾亦不解所謂傳當為摶字之誤也(摶與傳搏博相似故或誤為傳或誤為搏或誤為博並見下)摶與專同言聖人精神專一不旁騖也(徵四時論曰精神不專)寶命全形論曰神無營於眾物義與此相近古書專一字多作摶繫辭傳其靜也專釋文曰專陸作摶昭二十五年左傳若琴瑟之專一釋文曰專本作摶史記秦始皇紀摶心揖志索隱曰摶古專字管子立政篇曰一道路摶出入幼官篇摶一純固(今本摶並訛作博)內業篇曰能摶乎能一乎(今本摶訛作博)荀子儒效篇曰億萬之眾而摶若一人(今本摶訛作博)講兵篇曰和摶而一(今本摶亦訛作博)呂氏春秋適音篇耳不收則不摶高注曰不摶入不專一也皆其證
“그러므로 성인은 정신을 전하고 천기를 먹어 신명에 통한다.” 주가 살피건대 傳은 뜻이 통하지 않는다. 왕주가 정신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득도한 성인만 가능하다 한 것도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傳은 摶의 오자이다.〔摶은 傳·搏·博과 비슷하여 각각 그 글자로 잘못되기도 하니 아래에 보인다.〕 摶은 專과 같아 성인의 정신이 전일하고 곁으로 달리지 않는다는 뜻이다.〔「징사시론」에는 정신이 전일하지 않다고 했다.〕 「보명전형론」의 신이 뭇 사물에 분주하지 않다는 말도 비슷하다. 옛 책에서 專一은 摶으로 많이 썼다. 「계사전」 其靜也專(그 고요함은 전일하다)에 『석문』은 육씨가 專을 摶으로 썼다 했고, 소공 25년 『좌전』 若琴瑟之專一(거문고와 비파가 전일한 것처럼)의 『석문』은 專의 다른 본이 摶이라 했다. 『사기』 「진시황기」 摶心揖志(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뜻을 모은다)의 『색은』은 摶이 옛 專자라 했다. 『관자』 「입정」 一道路摶出入(길을 하나로 하고 출입을 전일하게 한다), 「유관」 摶一純固(전일하고 순수하며 굳다)〔현본은 둘 다 博으로 잘못됨〕, 「내업」 能摶乎能一乎(전일할 수 있는가, 하나일 수 있는가)〔현본은 博으로 잘못됨〕, 『순자』 「유효」 億萬之眾而摶若一人〔억만의 무리가 한 사람처럼 전일함, 현본은 博으로 잘못됨〕, 「강병」 和摶而一〔조화되고 전일하여 하나임, 현본도 博으로 잘못됨〕, 『여씨춘추』 「적음」 耳不收則不摶〔귀가 거두지 않으면 전일하지 못함〕에 고주는 不摶이 들어옴이 전일하지 않은 것이라 한 것이 모두 증거이다.
因於濕首如裹
因於濕首如裹: 습으로 머리가 싸인 듯하다
澍案此言病因於濕頭如蒙物不瞭了耳注蒙上文為說謂表熱為病當汗泄之反濕其首若濕物裹之則是謂病不因於濕邪之侵而成於醫工之誤矣且表熱而濕其首從古無此治法王氏蓋見下文有因而飽食云云因而大飲云云因而強力云云相因為病遂於此處之因於寒因於暑因於濕因於氣(氣謂熱氣說見下條)亦相因作解故有此謬說不思彼文言因而自是相因之病此言因於則寒暑濕熱各有所因本不相蒙何可比而同之乎前後注相承為說皆誤而此注尤甚故特辨之
주가 살피건대 이는 병이 습 때문에 생겨 머리에 물건을 덮은 듯 맑지 않다는 말이다. 주는 위 글을 이어 표열병은 발한해야 하는데 도리어 머리를 적셔 젖은 물건으로 싼 듯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습사 침범이 아니라 의사의 잘못으로 병이 생겼다는 말이 된다. 표열에 머리를 적시는 치료법은 예부터 없었다. 왕씨는 아래의 “그로 말미암아 배불리 먹는다”, “그로 말미암아 많이 마신다”, “그로 말미암아 힘을 쓴다”가 잇따라 병을 이루는 것을 보고 여기의 因於寒·因於暑·因於濕·因於氣〔氣는 열기이며 다음 조목에서 설명함〕도 잇따름으로 해석해 잘못된 설을 만들었다. 저 글의 因而는 서로 이어지는 병이지만 여기의 因於는 한서습열에 각각 원인이 있어 서로 이어지지 않으니 어찌 같게 보겠는가. 앞뒤 주가 이 설을 이어 모두 잘못되었지만 이 주가 특히 심하여 변론한다.
因於氣為腫
因於氣為腫: 기로 인해 붓는다
澍案此氣指熱氣而言上云寒暑濕此若泛言氣則與上文不類故知氣謂熱氣也陰陽應象大論曰熱勝則腫本篇下注引正理論曰熱之所過則為癰腫故曰因於氣為腫
주가 살피건대 이 氣는 열기를 가리킨다. 위에서 한·서·습을 말했으니 여기서 기를 두루 말하면 같은 종류가 아니므로 열기임을 안다. 「음양응상대론」은 열이 우세하면 붓는다고 했고, 이 편 아래 주가 『정리론』을 인용하여 열이 지나치면 옹종이 된다고 했으므로 기로 인해 붓는다고 한 것이다.
汗出偏沮
汗出偏沮: 땀이 한쪽만 젖도록 난다
汗出偏沮使人偏枯王注曰夫人之身常偏汗出而潤濕者(宋本作濕潤此從熊本藏本)久之偏枯半身不隨林校曰按沮千金作祖全元起本作恆澍案王本並注是也一切經音義卷十引倉頡篇曰沮漸也廣雅曰沮潤漸洳濕也魏風彼汾沮洳毛傳曰沮洳其漸洳者王制山川沮澤何氏隱義曰沮澤下濕地也是沮為潤濕之象曩澍在西安縣署見侯官林某每動作飲食左體汗泄濡潤透衣雖冬月猶爾正如經注所云則經文本作沮字無疑且沮與枯為韻也孫本作祖乃偏旁之訛(說文古文示作⿱一巛與篆書巛字相似故沮誤為祖)全本作恆則全體俱誤矣(沮之左畔訛從心小雅采薇正義引鄭氏易注所謂古書篆作立心與水相近者也其右畔訛作亙亙與且今字亦相近故合訛而為恆)
“땀이 한쪽만 젖도록 나면 편고하게 한다.” 왕주는 사람 몸에 늘 한쪽만 땀이 나 젖으면〔송본은 濕潤, 여기서는 웅본·도장본을 따름〕 오래되어 편고하여 반신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임교는 沮가 『천금』에서 祖, 전원기본에서 恆이라 했다. 주가 살피건대 왕본과 주가 옳다. 『일체경음의』 권10이 『창힐편』을 인용하여 沮는 스며듦이라 했고, 『광아』는 沮·潤·漸·洳가 젖음이라 했다. 「위풍」 彼汾沮洳(저 분수의 축축한 물가)의 모전은 沮洳를 젖어드는 곳이라 했고 「왕제」 山川沮澤(산천과 축축한 못)에 하씨 『은의』는 沮澤이 낮고 젖은 땅이라 했다. 그러므로 沮는 축축한 모습이다. 전에 내가 서안현 관청에서 후관의 임씨가 움직이거나 먹을 때마다 왼몸에서 땀이 나 옷을 적시며 겨울에도 그러한 것을 보았으니 바로 경주와 같아 원문이 沮임이 틀림없다. 또 沮는 枯와 압운한다. 손본의 祖는 편방의 오자이다.〔『설문』에서 示의 고문은 ⿱一巛이며 전서의 巛와 비슷하므로 沮가 祖로 잘못되었다.〕 전본의 恆은 전체가 잘못되었다.〔왼쪽이 心으로 잘못된 것은 「소아·채미정의」가 정씨 『역주』를 인용하여 고서 전서의 선심방과 水가 가깝다고 한 것과 같다. 오른쪽은 亙으로 잘못되었는데 亙·且는 지금 글자도 가까우므로 합쳐 恆이 되었다.〕
足生大丁
足生大丁: 발에 큰 정창이 생긴다
高粱之變足生大丁王注曰高膏也梁粱也(宋本作梁也從熊本藏本)膏粱之人內多滯熱皮厚肉密故肉變為丁矣所以丁生於足者四肢為諸陽之本也林校曰丁生之處不常於足蓋謂膏粱之變饒生大丁非偏著足也澍案林氏駁注丁生不常於足是矣其云足生大丁為饒生大丁辭意鄙俗殊覺未安足當作是字之誤也(荀子禮論篇不法禮不是禮謂之無方之民法禮是禮謂之有方之士今本是並訛作足)是猶則也爾雅是則也是為法則之則故又為語辭之則大戴禮王言篇教定是正矣家語王言解作政教定則本正矣鄭語若更君而周訓之是易取也韋昭曰更以君道導之則易取言膏粱之變則生大丁也
“고량의 변화로 발에 큰 정창이 생긴다.” 왕주는 高가 膏, 梁이 粱이라 했다.〔송본은 梁也이며 여기서는 웅본·도장본을 따름〕 기름지고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안에 체열이 많고 피부가 두껍고 살이 치밀해 살이 변하여 정창이 되며 발에 생기는 것은 사지가 여러 양의 근본이기 때문이라 했다. 임교는 정창이 반드시 발에 생기지 않으니 고량의 변화로 정창이 많이 생긴다는 말이지 발만 가리키지 않는다고 했다. 주가 살피건대 임씨가 항상 발에 생기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은 옳지만 足生을 饒生으로 풀이한 것은 말뜻이 비속하여 불안하다. 足은 是의 오자여야 한다.〔『순자』 「예론」의 “예를 본받지 않고 옳게 여기지 않으면 무방의 백성, 예를 본받고 옳게 여기면 유방의 선비”에서 현본은 是를 모두 足으로 잘못 썼다.〕 是는 則과 같다. 『이아』는 是가 則이라 했으니 법칙의 則에서 어사의 則이 된 것이다. 『대대례』 「왕언」 教定是正矣(가르침이 정해지면 바르게 된다)는 『가어』 「왕언해」에서 政教定則本正矣(정교가 정해지면 근본이 바르게 된다)이다. 「정어」 若更君而周訓之是易取也(임금의 도로 바꾸어 두루 가르치면 취하기 쉽다)에 위소는 임금의 도로 바꾸어 인도하면 취하기 쉽다는 뜻이라 했다. 곧 고량의 변화가 있으면 큰 정창이 생긴다는 말이다.
春必溫病
春必溫病: 봄에는 반드시 온병한다
冬傷於寒春必溫病澍案春必溫病於文不順寫者誤倒也當從陰陽應象大論作春必病溫(宋本亦誤作溫病今從熊本藏本乙正)金匱真言論曰故藏於精者春不病溫玉版論要曰病溫虛甚死平人氣象論曰尺熱曰病溫熱論曰先夏至日者為病溫評熱病論曰有病溫者汗出輒復熱皆作病溫
“겨울에 한에 상하면 봄에 반드시 온병한다.” 주가 살피건대 春必溫病은 문장이 순조롭지 않아 필사자가 뒤집은 것이다. 「음양응상대론」에 따라 春必病溫, 곧 봄에 반드시 온을 앓는다고 해야 한다.〔송본도 溫病으로 잘못되었으니 지금 웅본·도장본을 따라 순서를 고친다.〕 「금궤진언론」의 “정에 간직한 이는 봄에 온을 앓지 않는다”, 「옥판론요」의 “온을 앓아 매우 허하면 죽는다”, 「평인기상론」의 “척이 뜨거우면 온을 앓는다고 한다”, 「열론」의 “하지 전에 생긴 것은 온을 앓는 것이다”, 「평열병론」의 “온을 앓는 이가 땀이 나면 곧 다시 뜨겁다”는 모두 病溫이다.
筋脈沮弛精神乃央
筋脈沮弛精神乃央: 근맥이 무너지고 늘어지며 정신이 손상된다
味過於辛筋脈沮弛精神乃央王注曰沮潤也弛緩也央久也辛性潤澤散養於筋故令筋緩脈潤精神長久何者辛補肝也藏氣法時論曰肝欲散急食辛以散之用辛補之澍案注說非也沮弛之沮與汗出編沮之沮異義彼讀平聲此讀上聲沮弛謂壞廢也一切經音義卷一引三蒼曰沮敗壞也小雅小旻篇何曰斯沮楚辭九嘆顏黴薰以沮敗兮毛傳王注並曰沮壞也漢書司馬遷傳注曰沮毀壞也李陵傳注曰沮謂毀壞之弛本作弛襄二十四年穀梁傳弛侯荀子王制篇大事殆□□□□楊倞並曰弛廢也或作弛漢書文帝紀輒弛以利民顏注曰弛廢弛文選西京賦城尉不弛柝薛綜曰弛廢也本篇上文曰大筋緛短小筋弛長緛短為拘弛長為痿痿與廢相近刺要論肝動則春病熱而筋弛注曰弛猶縱緩也皮部論熱多則筋弛骨消注曰弛緩也縱緩亦與廢相近廣雅弛縱置也置即廢也是沮弛為壞廢也林校曰央乃殃也古文通用如膏粱之作高梁草滋之作草茲之類案林讀央為殃得之漢無極山碑為民來福除央吳仲山碑而遭禍央殃並作央即其證惟未解殃字之義澍謂殃亦敗壞之意廣雅曰殃敗也月令曰冬藏殃敗晉語曰吾主以不賄聞於侯今以梗陽之賄殃之不可是殃為敗壞也沮弛央三字義相近故經類舉之經意辛味太過木受金刑則筋脈為之壞廢精神因而敗壞故曰味過於辛筋脈沮弛精神乃央筋脈沮弛與形體毀沮精氣弛壞同意(形體毀沮疏五過論文精氣弛壞湯液醪醴論文)精神乃央與高骨乃壞同意(高骨乃壞見上文)王注所說大與經旨相背且此論味過所傷而注牽涉於辛潤辛散辛補之義斯為謬證矣
“매운맛이 지나치면 근맥이 무너지고 늘어지며 정신이 손상된다.” 왕주는 沮가 적심, 弛가 느슨함, 央이 오래함이라 하며 매운 성질이 윤택하게 힘줄을 흩어 기르므로 힘줄이 느슨하고 맥이 윤택하며 정신이 오래간다고 했다. 매운맛이 간을 보하기 때문이라며 「장기법시론」의 “간은 흩어지기를 원하니 급히 매운맛을 먹어 흩고 매운맛으로 보한다”를 들었다. 주가 살피건대 주설은 잘못이다. 沮弛의 沮는 汗出偏沮의 沮와 뜻이 다르다. 저것은 평성, 이것은 상성으로 읽으며 沮弛는 무너져 폐함이다. 『일체경음의』 권1이 『삼창』을 인용하여 沮가 패괴라 했고 「소아·소민」 何曰斯沮(어찌 이것이 무너졌다 하는가)와 『초사』 「구탄」 顏黴薰以沮敗兮(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무너졌구나)에 모전·왕주가 모두 沮는 무너짐이라 했다. 『한서』 「사마천전」 주는 沮가 훼괴, 「이릉전」 주도 훼괴라 했다. 弛는 본래 弛이다. 양공 24년 『곡량전』 弛侯(제후의 지위를 폐함)와 『순자』 「왕제」 大事殆□□□□(큰일이 위태롭다. □□□□)에 양량은 모두 弛가 폐함이라 했다. 혹 弛로 쓴다. 『한서』 「문제기」 輒弛以利民(곧 폐지하여 백성을 이롭게 한다)에 안주는 弛가 폐지함이라 했고, 『문선』 「서경부」 城尉不弛柝(성위가 딱따기 치는 일을 폐하지 않는다)에 설종은 弛가 폐함이라 했다. 이 편 앞의 “큰 힘줄은 오그라들어 짧아지고 작은 힘줄은 늘어진다. 짧아지면 구련, 늘어지면 위가 된다”에서 痿와 廢는 뜻이 가깝다. 「자요론」 “간이 동하면 봄에 열병을 앓고 근이 弛한다”의 주는 弛가 늘어지고 느슨함, 「피부론」 “열이 많으면 근이 弛하고 뼈가 소모된다”의 주는 느슨함이라 했다. 늘어지고 느슨함도 폐함과 가깝다. 『광아』는 弛가 縱置라 했으며 置는 廢이다. 그러므로 沮弛는 무너져 폐함이다. 임교는 央이 殃이며 고문에서 통용하여 膏粱을 高梁, 草滋를 草茲로 쓴 것과 같다고 했다. 살피건대 임씨가 央을 殃으로 읽은 것은 옳다. 한의 무극산비 “백성에게 복을 가져오고 앙을 제거한다”, 오중산비 “재앙을 만났다”에서 殃을 모두 央으로 썼으니 증거이다. 다만 殃의 뜻을 풀지 않았다. 나는 殃도 패괴의 뜻이라 생각한다. 『광아』는 殃이 패함이라 했고, 「월령」 冬藏殃敗(겨울에 저장한 것이 손상된다), 「진어」의 “우리 주인은 제후에게 뇌물 받지 않기로 알려졌는데 이제 경양의 뇌물로 이를 망쳐서는 안 된다”에서 殃은 패괴이다. 沮·弛·央 세 글자는 뜻이 가까워 경이 함께 들었다. 경의 뜻은 매운맛이 지나치면 목이 금의 형벌을 받아 근맥이 무너져 폐하고 정신도 패괴한다는 것이다. 筋脈沮弛는 形體毀沮(형체가 훼손됨)·精氣弛壞(정기가 풀어지고 무너짐)와 뜻이 같다.〔앞것은 「소오과론」, 뒤것은 「탕액요례론」의 글이다.〕 精神乃央은 高骨乃壞(높이 솟은 뼈가 무너짐)와 뜻이 같다.〔위 글에 보인다.〕 왕주설은 경의 뜻과 크게 반대이며 맛의 과도로 인한 손상을 논하는 곳에 매운맛의 윤택함·흩음·보함을 끌어왔으니 잘못된 증명이다.
是以知病之在皮毛也藏本無也字澍案上文是以知病之在筋也是以知病之在脈也是以知病之在肉也下文是以知病之在骨也句末皆有也字不應此句獨無藏本脫
“이로써 병이 피모에 있음을 안다.” 도장본에는 也가 없다. 주가 살피건대 위의 “병이 근에 있음을 안다”, “맥에 있음을 안다”, “살에 있음을 안다”와 아래의 “뼈에 있음을 안다”는 문장 끝에 모두 也가 있으므로 이 문장만 없을 수 없다. 도장본의 탈락이다.
生長收藏
생장수장
天有四時五行以生長收藏熊本藏本生長作長生澍案作長生者誤倒也有生而後有長不得先言長而後言生注曰春生夏長秋收冬藏謂四時之生長收藏是正文本作生長之明證下文亦曰故能以生長收藏終而復始
“하늘은 사시와 오행으로 생장수장한다.” 웅본·도장본은 生長이 長生이다. 주가 살피건대 長生은 잘못 뒤집힌 것이다. 생긴 뒤 자라므로 자람을 먼저, 생김을 뒤에 말할 수 없다. 주는 “봄에 생기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함, 곧 사시의 생장수장”이라 했으니 본문이 生長이었음을 밝히는 증거이다. 아래에도 “그러므로 생장수장하며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春必溫病
春必溫病: 봄에는 반드시 온병한다
熊本藏本作春必病溫澍案當從熊本藏本乙轉說見生氣通天論
웅본·도장본은 春必病溫이다. 주가 살피건대 웅본·도장본을 따라 순서를 뒤집어야 한다. 설명은 「생기통천론」에 보인다.
水火者陰陽之徵兆也
水火者陰陽之徵兆也: 수화는 음양의 징조이다
故曰天地者萬物之上下也陰陽者血氣之男女也左右者陰陽之道路也水火者陰陽之徵兆也陰陽者萬物之能始也澍案陰陽之徵兆也本作陰陽之兆徵也上三句下女路為韻(下古讀若戶召南採蘋宗室牖下與女韻殷其雷在南山之下與處韻邶風擊鼓於林之下與處馬韻凱風在浚之下與苦韻唐風采苓首□之下與苦與韻陳風宛醫宛醫之下與鼓夏羽韻東門之枌婆娑其下與栩韻幽風七月入我床下與股羽野宇戶鼠戶處韻小雅四牡載飛載下與栩鹽父韻北山溥天之下與土韻采菽邪幅在下與殷紓予韻大雅綿至於𧄍下與父馬滸女宇韻皇矣以對於天下與怒旅旅祜韻鳧鷖福祿來下與渚處湑脯韻烝民昭假於下與甫韻魯頌有駜鷺於下與鷺舞韻其餘群經諸子有韻之文不煩枚舉也)下一句徵始為韻徵讀如宮商角徵羽之徵(文十年左傳秦伯伐晉取北徵釋文徵如字三蒼雲縣屬馮翊音懲一音張里反)洪範念用庶徵與疑為韻逸周月篇災咎之徵(從太平御覽時序部十三所引)與負婦為韻(負古讀若丕小雅小宛果蠃負之與採似韻大雅生民是任是負與秠芑秠畝芑祀韻大戴記曾子制言上篇行則為人負與趾否韻婦古讀若否泰之否大雅思齊京室之婦與母韻周頌載芟思媚其婦與以土耜畝韻楚辭天問媵有莘之婦與子韻)是其證(蒸之二部古或相通鄭風女曰雞鳴雜佩以贈之與來韻宋玉神女賦復見所夢與喜意記異識志韻賈子連語篇其離之若崩與期韻又說文倗從人朋聲讀若陪位即從邑崩聲讀若倍凝為冰之或體而從疑聲𦀓為繒之□文而從宰省聲周官司几筵凶事仍幾注故書仍作乃爾雅第孫之子為仍孫漢書惠帝紀仍作耳楚策仰承甘露而飲之新序雜事篇承作時墨子尚賢篇守城則倍畔非命篇倍作崩史記賈生傳品物馮生漢書馮作每司馬相如傳葴橙若蓀漢書橙作持)今作徵兆者後人狃於習見蔽所希聞而臆改之而不知其與韻不合也凡古書之倒文協韻者多經後人改易而失其讀如衛風竹竿篇遠兄弟父母與右為韻而今本作父母兄弟(右古讀若以母古讀若每其字皆在之部若弟字則在脂部之與脂古音不相通)大雅皇矣篇同爾弟兄與王方為韻而今本作兄弟月令度有短長與裳量常為韻而今本作長短逸周書周祝篇惡姑柔剛與明陽長為韻(明古讀若芒)而今本作剛柔管子內業篇能無卜筮而知凶吉乎與一為韻而今本作吉凶(莊子庚桑楚篇誤同)莊子秋水篇無西無東與通為韻而今本作無東無西荀子解蔽篇有皇有鳳與心為韻(說文鳳從凡聲古音在侵部故與心韻猶風從凡聲而與心韻也見邶風綠衣穀風小雅何人斯大雅桑柔烝民)而今本作有鳳有皇淮南原道篇騖忽怳與往景上為韻(景古讀若樣)而今本作怳忽與萬物終始與右為韻而今本作始終天文篇決罰刑與城為韻而今本作刑罰兵略篇不可量度也與迫為韻(度同不可度思之度迫古讀若博)而今本作度量人間篇故蠹啄剖柱梁與羊為韻而今本作梁柱文選鵬鳥賦或趨西東與同為韻而今本作東西 答 客難外有廩倉與享為韻而今本作倉廩皆其類也
“천지는 만물의 위아래, 음양은 혈기의 남녀, 좌우는 음양의 길, 수화는 음양의 징조, 음양은 만물의 능시이다.” 주가 살피건대 陰陽之徵兆也는 본래 陰陽之兆徵也이다. 위 세 구절의 下·女·路가 압운한다.〔下는 옛날 戶처럼 읽었다. 「소남·채빈」 宗室牖下, 곧 종실 창 아래는 女와, 「은기뢰」 在南山之下, 남산 아래에 있음은 處와, 「패풍·격고」 於林之下, 숲 아래에서는 處·馬와, 「개풍」 在浚之下, 준 아래에 있음은 苦와 압운한다. 「당풍·채령」 首□之下는 苦·與와, 「진풍·완의」 宛醫之下는 鼓·夏·羽와, 「동문지분」 婆娑其下, 그 아래서 춤춘다는 말은 栩와, 「빈풍·칠월」 入我床下, 내 침상 아래로 들어옴은 股·羽·野·宇·戶·鼠·戶·處와 압운한다. 「소아·사모」 載飛載下, 날다가 내려옴은 栩·鹽·父와, 「북산」 溥天之下, 넓은 하늘 아래는 土와, 「채숙」 邪幅在下, 행전이 아래에 있음은 殷·紓·予와 압운한다. 「대아·면」 至於𧄍下, 𧄍 아래에 이름은 父·馬·滸·女·宇와, 「황의」 以對於天下, 천하에 응함은 怒·旅·旅·祜와, 「부예」 福祿來下, 복록이 내려옴은 渚·處·湑·脯와, 「증민」 昭假於下, 아래에 밝게 이름은 甫와, 「노송·유필」 鷺於下, 해오라기가 아래에 있음은 鷺·舞와 압운한다. 나머지 경서와 제자의 운문은 일일이 들 필요가 없다.〕 아래 한 구절은 徵·始가 압운하며 徵은 궁·상·각·치·우의 치처럼 읽는다.〔문공 10년 『좌전』의 진백이 진을 쳐 북징을 취했다는 말에 『석문』은 徵을 본음대로 읽으며 『삼창』에 풍익 소속 현으로 음은 懲, 다른 음은 張里反이라 했다고 한다.〕 「홍범」 念用庶徵, 여러 징험을 생각해 쓴다는 말은 疑와, 『일주서』 「월」 災咎之徵, 재구의 징험은〔『태평어람』 시서부13의 인용을 따름〕 負·婦와 압운한다.〔負는 옛날 丕처럼 읽었다. 「소아·소완」 果蠃負之, 과라가 이를 짊어짐은 採·似와, 「대아·생민」 是任是負, 이를 맡고 짊어짐은 秠·芑·秠·畝·芑·祀와, 『대대기』 「증자제언상」 行則為人負, 행하면 남에게 짐이 됨은 趾·否와 압운한다. 婦는 옛날 비태의 否처럼 읽었다. 「대아·사제」 京室之婦, 왕실의 부인은 母와, 「주송·재삼」 思媚其婦, 그 부인을 사랑함은 以·土·耜·畝와, 『초사』 「천문」 媵有莘之婦, 유신의 부인을 따라 시집감은 子와 압운한다.〕 이것이 증거이다. 〔증부와 지부는 옛날 혹 통했다. 「정풍·여왈계명」 雜佩以贈之, 여러 패옥을 주다는 來와, 송옥 「신녀부」 復見所夢, 꿈꾼 것을 다시 봄은 喜·意·記·異·識·志와, 가자 「연어」 其離之若崩, 떠남이 무너짐 같음은 期와 압운한다. 또 『설문』은 倗이 人을 따르고 朋을 소리로 하며 陪처럼 읽고, 位는 邑을 따르고 崩을 소리로 하며 倍처럼 읽는다고 한다. 凝은 冰의 이체인데 疑를 소리로 하고, 𦀓은 繒의 □문인데 宰의 생략형을 소리로 한다. 『주관』 「사궤연」 凶事仍幾(흉사에 궤를 거듭 놓음)에 주는 고서의 仍이 乃라 했고, 『이아』의 제손 아들을 仍孫이라 한다는 말에서 『한서』 「혜제기」는 仍을 耳로 썼다. 「초책」 仰承甘露而飲之, 우러러 감로를 받아 마심을 『신서』 「잡사」는 承 대신 時로 썼다. 『묵자』 「상현」 守城則倍畔의 倍를 「비명」은 崩으로 썼고, 『사기』 「가생전」 品物馮生의 馮을 『한서』는 每로 썼으며, 「사마상여전」 葴橙若蓀의 橙을 『한서』는 持로 썼다.〕 지금 徵兆로 된 것은 후인이 익숙한 것에 매이고 드물게 듣는 것에 가려 억지로 고쳐 운에 맞지 않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고서의 도치문이 압운하는 경우 후인이 고쳐 독법을 잃은 것이 많다. 「위풍·죽간」 遠兄弟父母, 형제와 부모에게서 멀어짐은 右와 압운하는데 현본은 父母兄弟로 썼다.〔右는 옛날 以, 母는 每처럼 읽어 모두 지부[之部]에 있지만 弟는 지부[脂部]여서 두 부는 고음에서 통하지 않는다.〕 「대아·황의」 同爾弟兄, 너희 형제와 함께함은 王·方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兄弟이다. 「월령」 度有短長, 길이에 짧고 긺이 있다는 말은 裳·量·常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長短이다. 『일주서』 「주축」 惡姑柔剛은 明·陽·長과 압운하는데〔明은 옛날 芒처럼 읽음〕 현본은 剛柔이다. 『관자』 「내업」 能無卜筮而知凶吉乎, 점치지 않고 흉길을 알 수 있는가는 一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吉凶이다.〔『장자』 「경상초」도 같은 잘못이다.〕 『장자』 「추수」 無西無東, 서도 동도 없음은 通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無東無西이다. 『순자』 「해폐」 有皇有鳳, 황과 봉이 있다는 말은 心과 압운하는데〔『설문』은 鳳이 凡을 소리로 한다. 고음이 침부이므로 心과 압운하니 風이 凡을 소리로 하여 心과 압운하는 것과 같다. 「패풍·녹의」·「곡풍」, 「소아·하인사」, 「대아·상유」·「증민」에 보인다〕 현본은 有鳳有皇이다. 『회남자』 「원도」 騖忽怳, 홀황히 달림은 往·景·上과 압운하는데〔景은 옛날 樣처럼 읽음〕 현본은 怳忽이다. 與萬物終始, 만물과 끝나고 시작함은 右와 압운하는데 현본은 始終이다. 「천문」 決罰刑, 벌형을 결정함은 城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刑罰이다. 「병략」 不可量度也, 헤아릴 수 없음은 迫과 압운하는데〔度는 不可度思의 度와 같고 迫은 옛날 博처럼 읽음〕 현본은 度量이다. 「인간」 故蠹啄剖柱梁, 좀과 딱따구리가 기둥·들보를 가름은 羊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梁柱이다. 『문선』 「붕조부」 或趨西東, 혹 서동으로 달림은 同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東西이며, 「답객난」 外有廩倉, 밖에 늠창이 있음은 享과 압운하는데 현본은 倉廩이다. 모두 같은 종류이다.
陰陽者萬物之能始也
陰陽者萬物之能始也: 음양은 만물의 능시이다
林校曰詳天地者至萬物之能始與天元紀大論同彼無陰陽者血氣之男女一句又以金木者生成之終始代陰陽者萬物之能始澍案陰陽者萬物之能始也當從天元紀大論作金木者生成之終始也金木與上天地陰陽左右水火文同一例終始與上上下男女道路兆徵皆兩字平列文亦同例若如今本則陰陽者三字與上相復能始二字義復難通注謂能為變化生成之元始(宋本吳本化下有之字此從熊本藏本)乃曲為之說即如注義仍與上四句文例不符蓋傳寫之訛也
임교는 天地者에서 萬物之能始까지가 「천원기대론」과 같은데 저곳에는 陰陽者血氣之男女 한 구절이 없고 陰陽者萬物之能始 대신 金木者生成之終始가 있다고 했다. 주가 살피건대 陰陽者萬物之能始也는 「천원기대론」에 따라 “금목은 생성의 종시이다”로 해야 한다. 金木은 위의 天地·陰陽·左右·水火와 같은 예이고 終始는 위의 上下·男女·道路·兆徵처럼 두 글자가 나란히 놓여 같은 문례이다. 현본대로라면 陰陽者는 위와 중복되고 能始는 뜻이 통하기 어렵다. 주가 변화·생성의 원시를 능히 한다는 뜻이라 한 것은〔송본·오본은 化 아래 之가 있으며 여기서는 웅본·도장본을 따름〕 억지 설명이다. 주의 뜻대로여도 위 네 구절의 문례와 맞지 않으니 전사의 잘못이다.
病之形能也 樂恬憺之能 與其病能 及其病能 願聞六經脈之厥狀病能也 病能論 合之病能
病之形能也·樂恬憺之能·與其病能·及其病能·願聞六經脈之厥狀病能也·病能論·合之病能: 병의 형능·담담함의 능을 즐김·그 병능과·그 병능에 미침·육경맥의 궐상과 병능을 듣고자 함·병능론·병능에 맞춤
此陰陽更勝之變病之形能也澍案能讀為態病之形能也者病之形態也荀子天論篇耳目鼻口形能各有接而不相能也形能亦形態(楊倞注誤以形字絕句能屬下讀高郵王先生荀子雜誌已正之)楚辭九章固庸態也論衡累害篇態作能漢書司馬相如傳君子之態史記徐廣本態作能(今本誤作熊)皆古人以能為態之證(態從心能而以能為態意從心音而管子內業篇以音為意志從心之而墨子天志篇以之為志其例同也此三字蓋皆以會意包諧聲)下文曰是以聖人為無為之事樂恬憺之能能亦讀為態與事為韻恬憺之能即恬憺之態也五藏別論曰觀其志意與其病能(今本誤作與其病也依太素訂正辨見本條)能亦讀為態與意為韻病能即病態也風論曰願聞其診及其病能即及其病態也厥論曰願聞六經脈之厥狀病能也厥狀與病能並舉即厥狀病態也弟四十八篇名病能論即病態論也方盛衰論曰循尺滑澀寒溫之意視其大小合之病能能亦與意為韻即合之病態也王於諸能字或無注或皮傅其說均由不得其讀釋音發音於本篇上文能冬不能夏曰奴代切下形能同則又強不知以為知矣
“이는 음양이 번갈아 우세해지는 변화로 병의 형능이다.” 주가 살피건대 能은 態로 읽으니 병의 형능은 병의 형태이다. 『순자』 「천론」의 “귀·눈·코·입의 형능은 각각 접하는 것이 있어 서로 능하지 못한다”의 形能도 形態이다.〔양량주는 形에서 잘못 끊고 能을 아래에 붙였는데 고우 왕선생의 『순자잡지』가 바로잡았다.〕 『초사』 「구장」 固庸態也(본래 평상한 상태이다)를 『논형』 「누해」는 態 대신 能, 『한서』 「사마상여전」 君子之態(군자의 상태)를 『사기』 서광본은 態 대신 能으로 썼다.〔현본은 熊으로 잘못됨〕 모두 고인이 能을 態로 쓴 증거이다.〔態는 心·能을 따르면서 能을 態로 쓰고, 意는 心·音을 따르면서 『관자』 「내업」은 音을 意로 쓰며, 志는 心·之를 따르면서 『묵자』 「천지」는 之를 志로 쓴다. 같은 예로 이 세 글자는 모두 회의에 해성을 포함한 듯하다.〕 아래의 “성인은 무위의 일을 하고 담담함의 能을 즐긴다”의 能도 態로 읽어 事와 압운하며 담담한 상태라는 뜻이다. 「오장별론」 “그 뜻과 병능을 본다”〔현본은 與其病也로 잘못되었으므로 『태소』에 따라 고쳤으며 변론은 해당 조목 참조〕의 能도 態로 읽어 意와 압운하며 병능은 병태이다. 「풍론」 “그 진찰과 병능을 듣고자 한다”도 병태이고, 「궐론」 “육경맥의 궐상·병능을 듣고자 한다”는 궐상과 병태를 함께 든 것이다. 제48편 「병능론」은 곧 「병태론」이다. 「방성쇠론」 “척의 활삽·한온을 따라 크기를 보고 병능에 맞춘다”도 能이 意와 압운하며 병태에 맞춘다는 뜻이다. 왕씨는 여러 能에 주가 없거나 억지로 붙여 설명했으니 모두 독법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석음·발음이 이 편 위의 能冬不能夏(겨울은 견디나 여름은 견디지 못한다)에 奴代切이라 하고 아래 形能도 같다 한 것은 모르면서 억지로 안다고 한 것이다.
從欲快志於虛無之守
從欲快志於虛無之守: 허무의 지킴에서 욕구를 따르고 뜻을 즐겁게 한다
是以聖人為無為之事樂恬憺之能(讀為態說見上)從欲快志於虛無之守澍案守字義不相屬守當為宇廣雅宇尻也(經典通作居)大雅綿篇聿來胥宇魯頌閟宮篇序頌僖公能復周公之宇周語使各有寧宇楚辭離騷爾何懷乎故宇毛傳鄭箋韋王注並曰宇居也虛無之宇謂虛無之居也從欲快志於虛無之宇與淮南俶真篇而徙倚乎汗漫之宇句意相似高誘注亦曰宇居也宇與守形相似因誤而為守(荀子禮論篇是君子之壇宇宮廷也史記禮書壇宇誤作性守墨子經上篇宇彌異所也今本宇誤作守)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의 일을 하고 담담함의 能을 즐기며〔態로 읽으며 앞 설명 참조〕 허무의 守에서 욕구를 따르고 뜻을 즐겁게 한다.” 주가 살피건대 守는 뜻이 이어지지 않으므로 宇여야 한다. 『광아』는 宇가 尻라 했다.〔경전은 居로 통용한다.〕 「대아·면」 聿來胥宇, 와서 거처를 살핌, 「노송·비궁」 서의 “희공이 주공의 宇를 회복함을 찬양한다”, 「주어」 “각각 편안한 宇가 있게 한다”, 『초사』 「이소」 “그대는 어찌 옛 宇를 그리워하는가”에 모전·정전·위주·왕주는 모두 宇가 居라 했다. 虛無之宇는 허무의 거처이다. 허무의 거처에서 욕구를 따르고 뜻을 즐겁게 한다는 말은 『회남자』 「숙진」의 “한없이 넓은 거처에서 노닌다”와 문장 뜻이 비슷하며 고유주도 宇는 居라 했다. 宇와 守는 형태가 비슷하여 守로 잘못된 것이다.〔『순자』 「예론」의 “이것이 군자의 단우·궁정이다”를 『사기』 「예서」는 壇宇 대신 性守로 잘못 썼고, 『묵자』 「경상」 宇彌異所也, 우는 다른 곳에 두루 미친다는 말에서 현본은 宇를 守로 잘못 썼다.〕